20년 전 교직 떠나며 토종 야생화 매력에 눈떠
양산 당곡마을서 꽃밭 만들어 우리 꽃 가꿔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면 키우기 까다로운 야생화를 튼튼하게 자라게 하고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기쁨 때문에 아직 손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20여 년째 야생화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온 이종순(71) 씨는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직에 몸담았던 아버지를 따라 양산 물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다시 함안 군북으로 집을 옮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며 마산으로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동안 창 너머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자연과 들꽃을 지켜봤던 기억은 자연스럽게 야생화 사랑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부터 식물 키우는 일을 즐겼지만 본격적으로 야생화에 빠진 것은 2000년 교직을 떠나면서다. 당시 부산에 살던 그는 '우리꽃사랑연구회'에 몸담으면서 토종 야생화 매력에 눈을 떴고 명예퇴직 후 제2의 삶을 야생화와 함께 보내고 있다.

점점 키우는 야생화가 늘어나자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양산 원동면 당곡마을로 꽃밭을 옮겼다. 이곳에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1100여 점의 화분이 가지런히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덧 꽃과 열매가 지고 수줍게 단풍이 든 화분 사이를 오가며 겨울나기 준비에 바쁜 그는 야생화를 가꾸는 동안 '사계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며 소녀처럼 눈을 반짝였다.

"야생화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피는 시기는 다르지만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 오면 잎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지만 다가올 봄을 다시 준비하는 모습 속에 사계절이 다 들어 있어요."

▲ 20여 년간 야생화와 함께 제2의 삶을 사는 이종순 씨. 그는 2000년 교직을 떠나며 본격적으로 야생화에 빠졌다. /이현희 기자
▲ 20여 년간 야생화와 함께 제2의 삶을 사는 이종순 씨. 그는 2000년 교직을 떠나며 본격적으로 야생화에 빠졌다. /이현희 기자

둥근잎꿩의비름, 시로미, 수정목, 자금우, 섬쑥부쟁이, 말오줌대나무….

그와 함께 화분 사이를 오가는 동안 일반인은 외우기도 쉽지 않은 야생화 이름을 불러가며 산지와 특성까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모습에서 애정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꽃, 우리 씨앗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꽃집에서 파는 꽃 대부분 외국산인데 토종꽃이나 씨앗 구하기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우리나라 자연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이 커요."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토종꽃을 구해도 진짜인지 외국산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잦고 심지어 파는 사람도 진위를 모르고 있었다며 말끝이 살짝 떨렸다.

그 때문일까? 그에게는 오랜 세월 손때 묻은 두꺼운 식물도감이 한쪽에 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야생화를 키우며 꽃과 잎 모양을 세심하게 살피고 식물도감과 비교하는 일은 빠뜨릴 수 없는 의식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물금읍 디자인센터에서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지금까지 동호회 단체전시회는 수차례 경험했지만 홀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전시회는 처음이라 두려움도 앞섰다. 자식처럼 가꾼 야생화 133종 135점을 선보이면서 그는 토종 야생화 매력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길 바라며 용기를 냈다.

"남편은 나만 관심이 많지 왜 자꾸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려고 하냐며 핀잔을 주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응원을 해줘 이 일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한 번 더 전시회를 하겠다고 하니 '이팔청춘'이라며 농담을 건네네요."

일흔을 넘기면서 많은 야생화를 가꾸는 일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는 그가 준비하는 다음 전시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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