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줄 시 216명 응모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참여
"참신·발랄한 작품 눈에 띄어 쉬운 말 쓰는 분위기 조성되길"

말과 글의 역할은 소통입니다. 우리는 소통이 잘 되고 있을까요? 12번으로 나눈 이번 기획은 10대 청소년과 함께 문제를 찾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는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입니다. 이 기획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의 지원으로, 한글학회 경남지회·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합니다.

지난 8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한 '○줄 시 공모전'은 도민을 대상으로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소개한 'ㄱㄴㄷ 하루 10분 우리말' 낱말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낱말을 이루는 모든 글자를 활용하여 글을 짓는 대회다. 정해진 글자를 활용하여 글을 짓되, 완성된 글이 그 낱말의 뜻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가 평가의 중요한 한 잣대였다. 이 기간 잊힌 토박이말을 찾아보고 줄 시를 보낸 도민은 모두 216명이다.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참여해 1편 이상의 작품을 응모했다. 코로나로 바뀐 일상과 심경을 짧은 시에 잘 드러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린 학생의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작품도 많았다. 반면, 대회 취지에 맞지 않게 우리말로 대체 가능한 '리뷰(다시보기), 언택트(비대면)' 등 외국어·외래어를 시 내용에 담은 작품도 일부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토박이말 뜻 잘 살려 쓴 작품 돋보여 = ○줄 시 특성상 음절을 이루는 글자에 맞는 단어를 즉흥적으로 떠올리며 다소 장난스럽게 적은 작품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선택한 토박이말의 뜻을 살리고자 애쓴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 위주로 평가해 1차 심사에서 64명의 작품을 추려냈다. 최종 심사 결과, 창원 신월중학교 3학년 전유진 학생이 쓴 '여우볕'을 으뜸작으로 뽑았다. '여우볕'은 '비나 눈이 오는 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볕'을 뜻하는데, 전유진 학생은 반대말이자 연관 단어인 '여우비(맑은 날 잠깐 오다 그치는 비)'를 활용해 시를 지었다. '여우볕'이 지닌 '행복, 희망' 상징성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버금작에는 장진석(47) 씨가 제출한 '곰비임비'가 선정됐다. '곰비임비'는 경사스러운 일 또는 어떤 일이 거듭 쌓이거나 연거푸 일어난다는 뜻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곰삭다' 등 토박이말을 잘 살려 말맛을 냈고, 일상에서 느끼는 가족 사랑을 재치 있게 잘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 27일 오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심사위원들이 ○줄시 공모전 심사를 하고 있다.  /김신아 인턴기자 sinar@idomin.com
▲ 27일 오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심사위원들이 ○줄시 공모전 심사를 하고 있다. /김신아 인턴기자 sinar@idomin.com

또 다른 버금작은 삼진고등학교 모준호(19) 학생의 '거울지다'다. '거울지다'는 '되비치어 보이다'라는 뜻인데, 모준호 학생 작품은 청소년기 겪는 불안함을 '거-울-지-다'를 활용하여 낱말 뜻을 잘 살려 긍정적으로 풀어냈다. 이번 공모전에 삼진고등학교에서는 11명이 응모했는데, 개인 정보 없이 작품 위주로 평가한 1차 심사에 다수 작품이 포함됐으며, 최종 26개 선정작에 6명이 포함됐음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북돋음작 최명(48) 씨 작품 '시부저기'는 시골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를 나열한 독특한 형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나열한 단어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잘 드러내 후한 점수를 받았다. 마산삼진고등학교 주성헌(19) 학생이 쓴 '여우볕'도 이번 공모전 취지에 잘 맞는 작품이었다.

함안 호암중학교 박진언(15) 학생 '겨끔내기'(서로 번갈아 하기)는 현시대 상황을 잘 반영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마지막 줄에 선택 낱말인 '겨끔내기'를 그대로 적어 아쉬움을 샀다. '띄엄띄엄'이라고 적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는 점을 덧붙여 둔다. 이 외 1차 심사에서 선정된 64명 작품 중 20개 작품이 보람작에 뽑혔다.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대회" = 이경수(창원 토박이말바라기 으뜸빛) 심사위원은 "일상에서 토박이말이 잊혀 가고 있는데 이번 공모전을 통해 도민이 잠시나마 토박이말을 생각했고, 표현하려고 고민하고, 단어를 써 보는 등 한 번이라도 시도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도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총평했다.

정현수(경남도민일부 문화체육부장) 심사위원은 "다수 작품이 순우리말을 살려 시를 적었고, 단순한 두 줄 시·세 줄 시가 아니라 시적인 상징성과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토박이말을 갖다 붙인 작품도 일부 보였고, 외국어·외래어를 쓴 작품도 보여 취지에 벗어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정대(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심사위원장은 이번 행사의 시작에 큰 의미를 담았다. 김 위원장은 "초·중·고등학생·일반인까지 골고루 공모전에 참여한 것이 고무적이고 바람직하다. 가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어른을 부끄럽게 하는 발랄하고 참신한 학생들의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며 "이런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일상에서 쉬운 우리말을 다시 살려 쓰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감수/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으뜸상(1명)

<여우볕>
여우비가 내립니다
우울함은 싫은지
볕과 함께 내립니다

/창원 신월중 3학년 전유진

 

버금상(2명)

<곰비임비>
곰삭은 가오리를 잘 쪄내고
비빔장 한 숟갈 잘 펴바르고
임자 한 입 나 한 입 웃음꽃 피면
비 내리듯 사랑이 온 집에 퍼진다

/장진석(47) 씨

 

<거울지다>
거울에 새겨진 모습에
울상짓지 말아요
지금 비친 모습은 당신을
다 담아내지 못했으니까요

/마산삼진고등학교 3학년 모준호

 

북돋음상(3명)

<시부저기>
시골아이
부엌연기
저녁알림
기적소리

/최명(48) 씨

 

<겨끔내기>
겨울이 다가온다
끔찍했던 2020년도 저물어 간다
내년은 코로나 없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겨끔내기 등교도 이제 그만…

/함안 호암중학교 2학년 박진언

 

<여우볕>
여러분이 힘들어 할 때
우울한 마음에 잠시나마
볕이 되어주는 존재

/마산삼진고등학교 3학년 주성헌

 

보람상(20명) (가나다순)

-권민기(8·진주 신진초등학교 1학년) <곱빼기>
-김가경(15·창원 창북중학교 2학년) <갈무리>
-김단영(16·창원 신월중학교 3학년) <여우볕>
-김사연(76) <시나브로>
-김영훈(19·마산삼진고등학교 3학년) <갈마들다>
-김정연 <뒤치다꺼리>
-김현전(44) <곰비임비>
-두꺼비 <모꼬지>
-박하늘(18·범숙학교 고등 2학년) <늘품>
-서헌(50) <여투다>
-송은유(13·창원초등학교 6학년) <비기다>
-유준석(24) <거우다>
-이경미(39) <곰비임비>
-이민욱(19·마산삼진고등학교 3학년) <거우다>
-이지현(11·진주 신진초등학교 4학년) <귀잠>
-이진희(37) <갈마들다>
-이채원(14·진주 선인국제중학교 1학년) <윤슬>
-이춘희(44) <곰살궂다>
-장은화 (39) <귀잠>
-차원홍(14·창원 신월중학교 1학년) <시부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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