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처럼 지낸 세 마을 합치자 미움 싹터
하지만 바다는 경계 만드는 법 없었으니

옛날옛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는 세 마을이 있었다. 마을은 세 개였지만 사실은 한 동네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이 마을에 살고, 태어난 자식들은 저 마을과 그 마을에 터 잡고 살았다. 후손들이 멀리 대처로 떠나기도 했지만 고향쪽을 바라보면 언제나 세 마을을 모두 한 고향마을로 여겼다. 명절에 고향에 오면 세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친구들을 찾아서 먹고 떠들고 놀았다. 맑으나 궂으나 고향마을은 늘 따듯한 '남쪽마을'이었다. 셋이지만 하나였다. 서로를 불편해하거나 마을 간의 이해관계를 크게 따지며 살지 않았다. 이럴 때는 져 주고 저럴 때는 이기면서 평화로웠다.

세상을 돌리는 큰 수레바퀴는 마을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저 평화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고향마을을 더 강하고 큰 마을로 만들고 싶었던 자들이 깃발을 들었다. 세 마을을 한 마을로 묶어 울타리와 경계를 지워 버렸다.

마을이름을 새 이름이 아니라, 그중 한 마을이름으로 세우니, 친구야, 형이야 아우야, 울타리 따위 수시로 넘고 놀던 세 마을사람들은 가슴에 금이 그인 듯, 상처를 입고 뿔뿔이 흩어져 마음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작은 이해관계에도 서로 대거리부터 하며 으르렁댔고 미워하고 눈물 흘렸다.

고향쪽을 바라보며 힘을 냈던 사람들은 이제 고향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운동회를 해도 신나지 않았고 지거나 손해라도 나면 서로를 탓하고 원망했다. 왜 강하고 큰 마을을 만들려 했는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음속 세 울타리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은 문득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왜 서로를 미워하며 탓해야 하는지, 서로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던 자신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끙끙대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바다를 봐라. 우리 마을은, 셋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같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를 보았다. 남풍이 불면 비가 내리고 서풍이 불면 파도가 치며, 밀물이면 밭을 갈았고 썰물에는 게와 가재를 주었던 바다가 여전히 있었다. 파도가 잔잔하거나 크게 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아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세 개로 나뉘는 일이 없었고, 아무리 큰 배가 지나가도 그 흔적은 이내 사라졌다. 항상 크게 하나로 세 마을 울타리를 골고루 만져주며 흘러 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다의 마음을 닮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들 마음에 괜스레 박힌 생채기를 지우려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때를 기억해 냈다. 곰곰 생각하니, 괜히 으르렁대며 서로를 나눠서 챙기던 한 마을 초기에도 노래하고 춤추고 놀 때는 달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에 사는지, 얼마짜리 집에서 사는지, 어느 집 자제인지 상관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놀았던 기억을 찾아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래도 저래도 변함없이 곁을 주는 바다를 배경삼고 놀아보기로 했다. 웃고 울며 쓰고 그리며 문화예술로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 들기도 했다. 노래와 춤, 글과 그림으로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서로를 위하며 바다처럼 섞여 살기로 했다.

큰 재앙이 닥쳐도, 한 마을이든 세 마을이든, 까짓거, 이래저래 흔들려도 자주 함께 놀며 헤쳐가기로 마음먹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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