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미술관서 최정화 개인전
지역민 함께한 작품 다채로워
수십 개의 냄비로 만든 무한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 '살어리, 살어리랏다'전이 열리고 있는 경남도립미술관 제1전시실 벽면 한구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당신은 기념비입니다.'

낙서하듯 그려진 이 글씨 왼쪽에는 이름표가 가득하다. 학창시절 '교복 명찰'을 떠올리게 하는 형형색색의 명찰들이다.

이렇게 모인 명찰은 총 1000개, 누군지 모를 이들의 이름뿐이었지만,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이름들이 보는 이에게 묘한 교감을 일으켰다. 경남도립미술관 1층 제1전시실에 설치된 이 작품은 직·간접적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도민 1000명의 이름이 적힌 명찰 작업물이다.

"자신의 작업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최 작가는 이 외에도 '당신의 빛'이라는 주제로 제1전시실에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여럿 내놓았다.

거미줄이 쳐진 녹슨 철근 덩어리, 깨진 유리거울, 현대식 의자와 낡고 오래돼 녹슨 나무 의자, 해안으로 밀려온 부서진 배, 스티로폼 부표, 마산수협공판장의 역사인 생선 상자 등 경남 도내 곳곳에서 찾은 재료로 작업들을 구성했다. 그중 나무로 만들어진 부서진 배 작품 안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조개와 소라 껍데기가 그 안에 놓여 있어 금방이라도 바다에 있다가 나온 듯한 배의 정취를 맛보게 해준다.

2층 제2전시실에서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도민들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모습이 담긴 옛 흑백사진, 학창시절 성적표와 상장, 졸업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수영장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 학교 졸업사진, 아버지와 말을 타는 사진 등 오래된 사진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 최정화 작가가 냄비와 명찰로 만든 '살어리, 살어리랏다'전 출품작 중 일부.  /최석환 기자
▲ 최정화 작가가 냄비와 명찰로 만든 '살어리, 살어리랏다'전 출품작 중 일부. /최석환 기자

가정용 밥상을 쌓아 올린 '밥상탑'과 가정에서 사용되던 냄비와 생활 그릇을 이어붙여 만든 작품 '인피니티', 실리콘으로 배추 수십 포기를 형상화해 만든 '배추와 리어카', 우산과 의자 손수레를 엮어 만든 '남해 바닷가 전망대' 등도 눈에 띄는 작품들이다.

2층 라운지엔 창원대 미술대학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페트병 뚜껑을 모아 만든 작품과 투명한 상자 안에 페트병과 인형, 필름 등을 담아낸 결과물도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2층 제3전시실의 주제는 '무이무이(無異無二)'다. 작가는 '무엇과 무엇은 다르다', '이것과 저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성 사회에서 내려온 선입견이라고 보고 오래된 고가구와 빛이 나는 네온사인을 접목한 작품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새와 꽃문양이 새겨져 오랜 세월이 느껴진 장롱의 얼개가 색다르다.

크고 작은 꽃과 날개를 편 채 하늘을 나는 새, 입을 벌리고 앉아있는 새가 엮인 장면 옆으로 장롱 칸마다 나무로 만들어진 오리와 새 모양의 형체가 장롱 안에 배치됐다. 이불을 넣는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장롱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3층 제4, 5전시실에선 공유를 위한 창조(거제), 비컴프렌즈(양산), 돌창고프로젝트(남해), 팜프라(남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활동상을 소개하는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전시 주제는 '별유천지'다. 사회적 쟁점과 다양한 갈등들을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사회적 실천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과정이 이번 전시에 담겨 있다.

최 작가는 "이렇게 어려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시의 주인공인 관객들이 직접 와서 보고 전시를 완성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다. 문의 경남도립미술관(055-254-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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