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여중·경해여중 학생 대상
쉬운 우리말 쓰기 청소년 교육
한자·영어 우리말로 바꿔 쓰면
누구나 두루 이해하기 쉬워
자연스레 놀듯이 배우고 익혀야

말과 글의 역할은 소통입니다. 우리는 소통이 잘 되고 있을까요? 12번으로 나눈 이번 기획은 10대 청소년과 함께 문제를 찾고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는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입니다. 이 기획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의 지원으로, 한글학회 경남지회·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합니다.

'쉽다'는 '행해지는 데 그다지 많은 수고나 노력이 필요치 않다'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쉬운 말이란, 많이 배운 사람뿐만 아니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도 한 번에 알아듣는 말이다.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데는 공감을 하지만, 어떤 말이 더 쉬운 말인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창수(토박이말바라기 맡음빛 상임이사) 신진초등학교 교사는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이 다른 나라 말을 한자어로 바꾸는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전부터 써 왔던 순우리말인 '토박이말'로 바꿨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이 교사는 지난 8월 진주여자중학교·경해여자중학교 학생 10여 명을 모아 놓고 토박이말을 알려 주고 "쉬운 말이란" 하고 되물었다. 청소년들은 "홍수(洪水), 초석(礎石)보다 큰물, 주춧돌이 쉽다"고 답했다.

◇"우리말 없어서 한자어를 쓴다?" = "지우개는 왜 지우개일까?" "지우니까요." "연필은 왜 연필일까?" "……." "지우개가 '지우다'와 도구를 뜻하는 '-개'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라면, 연필(鉛筆)은 왜 '쓰개'라고 하지 않을까?" "……."

이 교사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강의를 시작했다.

"쓰개는 여러 개가 있다. 무엇으로 쓰느냐에 따라 '○○쓰개'가 된다. 볼펜(ball pen)은 잉크가 들어 있는 가느다란 대롱 끝에 붙은 작은 공(ball)이 회전하면서 글씨가 써지게 돼 있다. 볼펜은 '공쓰개', 연필은 '숯쓰개', 색연필은 '빛(빛깔)쓰개'로 쓸 수 있다. 우리말이 없어서 볼펜·연필이라고 쓰는 게 아니라 고민이 없었고, 토박이말이 촌스럽고 없어 보이는 말이라 여긴 탓이다."

자전거(자동차) '브레이크(brake)'는 속도를 멈추게 하는 장치다. 이를 '멈추개'라고 한다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두루 기능을 알 수 있다.

대형 상점에서 쓰는 '카트'는 '손수레'로 대신할 수 있다. '수레'는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바퀴를 달아 굴러가게 만든 운송 수단'을 뜻한다. '손수레'를 들어본 적 없는 초등학생에게 손으로 밀고 다니는 바퀴 달린 바구니는 '카트'가 첫 말이고 익숙한 말이다. '발수레'보다 '자전거(自轉車)'를 먼저 배운 청소년에게 토박이말은 '바이시클(bicycle)'보다 어색한 말이 됐다.

이 교사가 학생들에게 토박이말과 말을 만드는 원리를 알려 주자, 청소년들은 한자어·외국어도 쉽게 토박이말로 바꿨다.

이예진(경해여중 1학년) 양은 '헤어 디자이너(hair designer)'를 '멋 지음이, 머리 바꿈이'로 바꿨고, 제서현(진주여중 3학년) 양은 '트레이너(trainer)'를 '건강 지킴이, 몸 가꾸미, 몸 바꾸미'로 제안했다. 김정원(진주여중 1학년) 양은 '아나운서(announcer)'를 '알림이, 말씀잡이'로 쓰면 두루 이해가 쉽겠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국립국어원이 우리말 순화를 위해 말다듬기위원회를 운영하고 바꾼 말을 알리고 있지만, 영어를 한자어로 바꾸는 데 그치고 있다. 우리말은 어차피 한자말이 대부분이고 우리말은 너무 적어서 제대로 뜻을 옮기기 어렵다고 하지만,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꾸기를 할 때 순우리말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안 되면 한자말이라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국어문화원연합회가 후원한 2020 쉬운 우리말 쓰기 청소년 교육이 지난 8월 14일 오후 진주시 평거동 한살림 경남생협 진주지부에서 열렸다. <br /><br />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국어문화원연합회가 후원한 2020 쉬운 우리말 쓰기 청소년 교육이 지난 8월 14일 오후 진주시 평거동 한살림 경남생협 진주지부에서 열렸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배울 기회가 적은 게 문제" = 청소년 교육은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예진 양은 "자주 들어 무슨 말인지는 알아도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이 많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토박이말은 한번 들으면 이해가 되고, 보고 듣고 하는 것과 연결돼 쉽지만 처음 들어 보는 말이 많다"고 말했다.

조예림(진주여중 1학년) 양은 "학교에서 교과 시간 외에 토박이말을 배우고 쓰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강민주(진주여중 1학년) 양은 "토박이말을 굳이 찾아 쓰지 않고 신문에서 자주 보고, 라디오·텔레비전 등에서 쉽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부분은 이 교사가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교사는 "우리는 외래종 무단 방사를 막는 법도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면서 들온말이나 다른 나라 말이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말글 생태 파괴'에는 너그럽다"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기르는 쪽에 힘을 쓰는 만큼 토박이말을 잘 쓰는 사람을 기르는 쪽에도 그만큼의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운 적이 없어서 오히려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우리말, 널리 알리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학생들이 이미 답을 말했다. 토박이말을 새롭게 공부하라고 하면 또 다른 짐을 지우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토박이말을 넉넉하게 놀듯이 배우고 익혀 서로 느낌, 생각, 뜻을 막힘없이 주고받는다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모두가 토박이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될 것이다. 살피고 챙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동물과 식물을 챙기듯이 힘을 잃은 토박이말을 챙겨야 한다."

감수/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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