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도 운전하다가도 불쑥 찾아오는 그날의 아픔
아무리 애써도 잊히지 않아 스스로 비난하는 일 잦아지고
무기력한 일상에 소외감 커져 고통 끝내고파 무모한 생각도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산추련)이 이달 <노동재해 트라우마 : 사회적 치유와 회복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자료집을 펴냈습니다. 이번 자료집은 앞서 산추련이 기획해 나왔던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2019년 4월)에 이은 결과물입니다. 책이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생애사를 기록했다면, 자료집은 사고를 경험한 현장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하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세분화해 분석했습니다. 2017년 5월 1일 노동자의 날, 삼성중이 프랑스 에너지·석유회사 토탈에서 수주한 해양플랫폼(마틴 링게) 공사 현장에서 골리앗크레인(800t급)과 지브(jib)크레인(32t급)이 충돌해 크레인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습니다.

150쪽 자료집은 1부 '노동재해와 트라우마, 고통을 바로 보다'와 2부 '공감과 사회적 치유를 위한 제언'으로 나뉩니다. 1부는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 12명을 비롯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동료, 진해~거제 해저터널 배관공사 비소 중독 노동자, 조선·금속·집배·화물 노동자 등 20여 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실었습니다. 2부는 사회학자·의사·노무사·변호사 등 전문가의 유의미한 제언을 담았습니다. 매년 10만여 명이 노동재해를 겪고, 2000여 명이 숨집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사회적 치유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2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사고 사흘째인 2017년 5월 3일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는 넘어져 크레인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크레인 사고는 5월 1일 오후 2시 50분께 일어났고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남도민일보 DB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사고 사흘째인 2017년 5월 3일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는 넘어져 크레인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크레인 사고는 5월 1일 오후 2시 50분께 일어났고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남도민일보 DB

※ 큰따옴표 안은 모두 삼성중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들의 말입니다.

노동자들의 머릿속과 몸에 새겨진 사고 당시 현장은 끔찍하다. "제 옆에 있던 막내가 27살짜리였는데 (중략) 그 친구 첫 출근이었는데. 그 친구가. 제가 이 친구는 신경을 못 썼지요. 그래가지고 이 친구는 못 피하고 그 자리에서 깔려서 머리가 터져서 죽었어요. 그리고. 저는 멀쩡했고. 반대쪽으로 뛴 이 행님은 붐대는 피했는데, 붐대에서 와이어 줄이 때려가지고. 사람이 그렇게 날아가는 건 처음 봤어요." (30대 노동자)

시간이 좀 지나면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상처가 깊었다. "운전을 하다가 아니면 버스를 타도,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셔도, 아침에 출근해 밥을 먹어도" (40대 노동자) 불쑥불쑥 그때 그 기억이 찾아왔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나"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척하며 눈물을 닦아낸 적도 있었다. "자면서 계속 울고 신음"을 내기도 하는데, "술 마시면 그게 잊히니까" (20대 노동자) 계속 술을 찾기도 했다.

고통이 강력하고 지속적임을 실감하고 있다. "(흔들린 목소리로) 하…. 그냥 미쳐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침묵) 사고 때 이야기만 하려고 해도 가슴 떨리고 울음이 나서 얘기를 잘 못하겠어요. (중략) 그때 느꼈던 그걸 계속해서 꿈에서도 느끼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공포감이에요." (20대 노동자)

피하면 잊힐까도 싶었다. "크레인이 나한테 넘어질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 "이삿짐 사다리차만 봐도 피해 다니고" (40대 노동자) 일상에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풍경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마음을 쉽사리 떨쳐내지는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느냐, 너무 억울해 죽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요것 때문에 공사기간이 연장된다, 돈 벌어먹을 찬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나머지는 뻔할 뻔 자예요. 뭐 '흘러가는 대로 지나갈 뿐이다', '사고 한두 번도 아니고' 하면서. 거기서 제 신념이 무너졌어요." (30대 노동자)

스스로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고, 죄책감도 더해졌다. "아, 나도 차라리 그때 한 10분 정도 일찍 올라가서 그 앞에 있었으면 죽지 않았겠나." (50대 노동자) "5월에는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갑자기가 아니고 이게 계속 차츰차츰 이렇게 조금씩 온 것 같아요." (40대 노동자)

일상은 무기력해졌고 소외감도 커졌다. 술을 먹고 누군가와 싸웠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거나 예전보다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열한 살 딸 이름"(40대 노동자)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 답답해하거나 수면제 없이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도 많아졌다. 때로는 '나를 해치면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까'라는 무모한 생각이 스쳤다. "병원에서 약 받아온 거를 한 번에 다 먹었거든요. (헛웃음) 근데 안 죽더라고…. 그냥 그다음 날 똑같은 시간에 깨어나더라고요." (20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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