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소속
사업장서 유서 남긴 채 숨져
구조적 문제·노동환경 지적
진해경찰서, 사망 원인 수사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일하던 50대 택배기사 ㄱ 씨가 택배사의 구조적인 문제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일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ㄱ 씨는 이날 새벽 3시께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에 있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하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ㄱ 씨는 이날 새벽 동료 조합원에게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강서지점 관리자는 오전에 고인의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억울합니다"라고 시작된 ㄱ 씨 유서에는 "우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 구입에 전용번호판까지 (준비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은 200만 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ㄱ 씨는 이어 "로젠 강서지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고용해야 할 직원 수를 줄이고, 시설 투자를 뒤로해서 소장(기사)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한 달 2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이런 구역은 소장(기사)을 모집하면 안 되는데도 (대리점은) 직원을 줄이기 위해 소장을 모집해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팔았다"고 지적했다.

ㄱ 씨는 또 "심지어 집하거래처 이사로 수익이 줄고 있음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기들 이익만을 신경 쓰고 있다"며 "한여름 더위에 하차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150만 원이면 사는 이동식 중고 에어컨조차도 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름철) 20여 명의 소장을 30분 일찍 나오라 했다', '비트코인(가상화폐) 채굴기에 투자할 돈은 있으면서 지점에 투자하라고 하면 돈 없다는 이유만 댔다'고 적었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CJ대한통운 규탄대회 후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 5명의 영정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CJ대한통운 규탄대회 후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 5명의 영정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노조는 "입사하는 과정에서 적게는 30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이 넘게 내는 로젠택배 권리금은 잘못된 관행"이라며 "회사는 고인이 월 200만 원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그만둔다고 하자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돌리고, 그만두려면 직접 사람을 구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어 "(계약서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일방적으로 그만두면 손해 배상을 물리는 계약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고인은 사망 직전까지 본인의 차량에 '구인광고'를 붙이고 운행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ㄱ 씨 사망으로 올해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는 11명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물량 탓에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대리점의 갑질을 지적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경남도민일보>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측 의견을 듣고자 지점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ㄱ 씨 사망소식은 이날 국정감사장에도 전해졌다. 이날 양이원영(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은 "ㄱ 씨는 수입이 적어 신용도가 떨어지고 원금과 이자 등을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부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늘어나면서 택배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이 같은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지 환경노동위에서 국감 기간뿐 아니라 이후에도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진해경찰서는 '갑질'에 의한 사망 여부에 대해 신중함을 표했다.

진해경찰서 관계자는 "업무 과정에서 회사와 불협화음이 있어 보였던 것은 사실이나 '갑질'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족과 주변 지인들은 고인이 8개월 전 택배 회사에 취직하기 전부터 부채에 시달렸다고 진술했고, 유서에서도 생각만큼 수익금이 생기지 않는 현실에 낙담했던 정황을 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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