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마음 뒤흔든 혼신의 연기

코로나19로 수차례 연기됐던 공연이 지난 9일 드디어 관객과 만났다. 바로 경남도립극단의 <토지Ⅰ>이다.

이번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 올해 창단한 도립극단의 첫 공연이고 통영 출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연극으로 제작되는 것 역시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날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공연은 쉬는 시간(15분)을 포함해 총 3시간으로 국내 창작극으로서 보기 드문 대작이다.

알다시피 소설 <토지>는 한국 소설사 최대 문제작이다. 시대적 배경은 구한말부터 1945년 해방의 순간까지, 집필 기간 26년, 등장인물만 해도 600여 명이다. 서사의 방대함과 복잡한 플롯 또한 박경리 선생의 문학정신과 생명사상을 연극으로 담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괜한 우려였다. 우선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예술감독의 작품 선정이 영리했고 관객의 눈을 끄는 무대 연출,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과 노래가 돋보였다.

<토지Ⅰ>은 소설의 전반부를 이끌던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한다. 최참판댁 손녀 최서희가 부모를 잃은 뒤 할머니마저 여의고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챈 조준구에 쫓겨 평사리를 떠나는 장면까지다.

구한말의 이야기지만 땅에 대한 욕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신체적·정신적 결함 등을 보니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 땅은 하나도 없고 내는 언제 장가 가노. 하늘에는 주인이 없는데 땅에는 주인이 있노"라는 대사, 양반과 노비 등 계급의 불평등을 다룬 장면, "우리가 이땅의 주인이다"고 외치며 평등과 자주를 위해 죽창을 든 평범한 사람들, 조준구의 꼽추 아들 조병수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또출네 등이 그러하다.

평사리에 전염병인 호열자가 돌면서 마을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다. 조준구가 최참판댁 재산을 장악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간질하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다. 서희 일행은 옥죄는 조준구를 피해 간도로 가면서 극은 끝난다. 주인공 서희는 외친다. "땅의 주인은 그 땅에 생명을 키우는 농부가 주인이다. 내 고향 내 땅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진다.

▲ 경남도립극단 창단극 <토지Ⅰ> 중 마을주민들이 의병을 조직해 죽창을 들고 조씨 일가에 대항하는 장면.  /경남도립극단
▲ 경남도립극단 창단극 <토지Ⅰ> 중 마을주민들이 의병을 조직해 죽창을 들고 조씨 일가에 대항하는 장면. /경남도립극단

김옥순(46)·김희진(16) 모녀는 공연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녀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예매를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다"며 "도민으로서 이런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인상 깊은 대사로 주인공 서희가 '슬퍼도 울지 않고 기뻐도 웃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을 꼽으며 "다음 공연이 열리면 꼭 보러 오겠다"고 했다.

하반기 공연을 준비 중인 마산 해운중 연극반 학생들은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서정민(43) 교사는 "연극 자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배우 개개인의 연기와 무대 연출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경훈(15) 학생은 "소규모 연극만 보다가 배우 수십 명이 참여한 3시간짜리 대작을 처음 보았다"며 "꽤 긴 시간인데도 관객의 집중도가 높았고 특히 마을 사람들이 달맞이 놀이를 하는 장면과 서희와 조준구가 대비되며 극적으로 그려지는 장면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문홍 연극평론가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과 무대 메커니즘이 결합한 멋진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 평론가는 "배우들이 민초의 토지에 대한 열망과 사랑, 계급에 대한 저항이라는 큰 목표로 연기를 했기 때문에 조화가 돋보였다"며 "공간의 결을 따스하게 표현한 조명과 음악, 무대 미술이 관객을 3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끌어당겼다"고 말했다.

박장렬 초대 예술감독은 "코로나19로 두 차례 공연이 취소된 후 열린 공연이라 감사한 마음이 크다"며 "지자체와 극단의 협업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박경리 선생이 말한 '생명에 대한 연민'을 어떻게 극 속에서 풀어낼까,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삶 속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듯 어떻게 하면 모두가 주인공이 되느냐 이 두 가지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경남도립극단은 앞으로 두 차례 더 공연을 연다. 오는 23일 오후 6시 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공연장과 오는 31일 오후 3시 창원 3·15아트센터에서다. <토지Ⅱ>는 내년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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