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영향 SNS 적극 활용
필사 인증하는 '#추모'줄이어
경남 넘어 작품 널리 확산 기회

"우리가 그녀를 추모하는 방식은 그녀의 문학, 그녀가 남긴 책을 들춰보며 '시인 허수경'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지난 3일 진주 출신 허수경(1964~2018) 시인의 두 번째 기일을 맞아 10일까지 온라인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 지역쓰담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허수경 유고집 읽기 모임./지역쓰담<br /><br /><br /><br />
▲ 지역쓰담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허수경 유고집 읽기 모임. /지역쓰담

◇코로나 시대 시인을 추모하는 방법 = 허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이듬해 첫 시집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발표했다. 이어 1992년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내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고대동방고고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받고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독일에 살면서도 문학의 길을 계속 걸었다. 시집은 물론 산문, 장편소설, 동화, 번역서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벌이다 2018년 10월 3일 위암 투병 생활 끝에 타계했다. 현재 독일 뮌스터 외곽 발트프리덴 호르스트마르-알트 35번지 233번 참나무 아래 묻혀있다. 타계하기 직전 산문집 <그대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난다, 2018년 8월)가 재발간됐고, 타계 후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 2018년 11월)와 장편소설 <모래도시>(문학동네, 2018년 11월)가 출판됐다.

지난해 1주기는 고향 진주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수경 전작 읽기 모임'과 '허수경 작품 필사 모임'이 진행했었다. 올해는 지역쓰담과 진주문고가 준비하고 진주모아·모아쓰다, 도시달팽이, 배건네공작소, 허수경전작읽기모임 같은 지역의 크고 작은 모임들이 동참해 2일에서 10일까지 온라인 추모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역쓰담은 진주를 중심으로 지역콘텐츠를 발굴·탐구하는 비영리 문화단체다. 이름은 '지역을 쓰고 담는다(기록한다)'를 줄인 것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쓰다듬다는 의미도 있다. 추모 방식은 허수경 시인의 시와 글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방식이다. 필사 인증샷, 낭독 영상, 짧은 발췌문 등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해시태그(#)를 붙여 #허수경시인_2주기_추모, #그녀의_시_그녀의_책, #가기전에_쓰는_글들을 함께 써주면 된다.

▲ 허수경 추모 온라인 릴레이에 참여하며 최세현 지리산 생명연대 공동대표가 공개한 필사본./최세현
▲ 허수경 추모 온라인 릴레이에 참여하며 최세현 지리산 생명연대 공동대표가 공개한 필사본. /최세현

◇필사로 낭독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 5일 오전까지 많은 이들이 온라인 추모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수 이마주 씨는 허 시인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과, 1992) 필사본을 공개하고,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이란 시를 직접 낭송한 영상을 SNS 계정에 올렸다.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꿈같은가 현세의 거친 들에서 그리 예쁜 일이라니// 나 돌이켜 가고 싶진 않았다네 진저리치며 악을 쓰며 가라 아주 가버리라 바동거리며 그러나 다정의 화냥을 다해/ 온전히 미쳐 뛰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 등꽃 재재거리던 그 밤 폭풍우의 밤을 향해//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적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 뿐인가// 인왕제색커든 아주 가버려 꿈 같지도 않게 가버릴 수 있을까, 왜 지난 일을 생각하면 내 몸이 마음처럼 아픈가" -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전문

시인과 중·고교 시절 6년 동안 독서회를 같이한 이장규 진해드림요양병원장은 시인의 미발표 작품 '진주라는 곳'이라는 시를 올리며 옛 친구를 추모했다.

"시 속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추억을 나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남강변의 그 꿈같던 풍경들. 대숲과 나무와 풀들. 어릴 때 남강변 풍경 같은 것을 보면서 자란 이들과 아닌 이들은 삶의 풍요로움에서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바로 그렇기에 또한, 풍요롭지 않은 이들에게도 '먼 세계의 빛'이 가닿아야 하고 이를 위해 '사람을 모으는 집'이 있어야 할 테다. 사람 그 자체만이 아니라 집, 즉 사람을 모으는 지역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구체성 내지 물적 토대가 없는 이념이나 의제는 공허하다."

지역쓰담 양미선 씨는 허수경 산문집 <그대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131쪽을 인용했다.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나는 너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나에게 왜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지역쓰담 권영란 대표는 온라인 장점이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이번 온라인 추모가 오히려 경남은 물론 다른 지역에도 허수경 시인을 더 많이 알릴 기회가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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