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건설로 사라지는 마을
옛 기억·풍경에 가슴 뭉클

'이보게 들었는가? 우리 마을이 없어진다네. 그러면 우리는 오데로 가노? 이곳 떠나서 우찌 살라꼬? 평생을 여기서 농사짓고 자식 출가시키고 살았는데 가기는 오데로 가라꼬? 내는 못나간다. 죽어서 나갈끼다.'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에서 열린 사진전 '사라지는 것들의 여백-평촌마을'에 나온 이환배(71) 평촌마을 이장의 시 '내고향 평촌'의 한 구절이다. 평촌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이 이장의 시는 현수막에 적혀 평촌마을 입구에 나붙었다. 그의 시 양옆과 맞은편에 세워진 나무판자에는 자신의 집 앞에서 촬영한 주민들의 사진과 평촌마을에 대한 추억이 깃든 흑백사진 등이 걸렸다. 국악 공연 세트장과 손님맞이 식사 대접을 위한 걸상과 의자도 행사장 주변에 차려졌다.

▲ '사라지는 것들의 여백-평촌마을' 사진전이 열린 지난 26일 오후 시민들이 사진전에 나온 출품작을 보고 있다.  /최석환 기자
▲ '사라지는 것들의 여백-평촌마을' 사진전이 열린 지난 26일 오후 시민들이 사진전에 나온 출품작을 보고 있다. /최석환 기자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지난 26일 오후 7시께, 평촌마을은 사진전을 보러 온 마을 주민들과 다른 지역 시민들, 교통 통제에 나선 해병대전우회 회원들로 북적였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웃음꽃이 가득했다. 손뼉을 치며 국악그룹 '길'의 국악 공연을 관람하는가 하면, 대화를 나누면서 마을 주민들이 차린 음식을 나눠먹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는 술도 먹고 사진도 보고 공연도 즐기는 흥겨운 마을 잔치처럼 보였지만, 오랜 기간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옮기게 된 주민들의 표정 한 구석에선 씁쓸함과 안타까운 감정이 묻어났다.

이 이장은 "대동사람들이 사진전을 열어줘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기분이 좋지만,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강제 이주를 하게 되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촌마을은 정이 남아있는 농촌마을이고 어느 마을보다도 살기 좋은 곳이다"며 "평촌마을에서 60년을 살았는데 국내에서 농사짓기 가장 좋은 자리에 왜 산업단지를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9월 26일 김해시 대동면에서 열린 평촌마을 사진전을 보러 온 마을 주민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대동사람들
9월 26일 김해시 대동면에서 열린 평촌마을 사진전을 보러 온 마을 주민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대동사람들

평촌마을에서만 평생을 살아왔다는 김학엽(67) 씨는 "마을이 사라지게 된 것은 굉장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며 "오늘은 기분이 정말 좋지만 세월이 지나면 오늘의 사진전은 슬픈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도 다 같은 마음일 거다. 여기서 농사지어서 경제적으로 살림이 나아진 사람이 많은데 좋은 농터와 살기 좋은 마을이 사라지게 돼 무척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사진전을 찾은 양우열(54) 씨도 마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집사람이 평촌마을 사람이다. 처할머니, 장인어른, 장모님의 옛날 모습과 지금은 안 계신 분들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까 뭉클한 감정이 든다"며 "산업화에 의해서 마을이 사라지게 돼 안타까운 마음이다"고 말했다.

평촌마을 사진전은 이날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뒤 막을 내렸다. 추후 마을 주민들은 평촌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김경남 대동사람들 대표는 "공동체 해체 문제는 평촌과 소감 마을뿐 아니라 다른 마을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며 "사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옛 사진을 통해 평촌의 행복한 과거를 봤고, 단합된 사진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인했다. 이 희망을 모두가 같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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