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인원 제한 수영장·결혼식
'천천히·작게'하니 의미 더 깊어지고

며칠 전, 문자 한 통이 왔다. 코로나로 문을 닫았던 수영장을 재개장한다는 문자였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선착순 50명만 입장 가능! 단서조항을 보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한꺼번에 수백 명을 수용하는 창원실내수영장에 시간별로 단 50명만 들어갈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그 치열한 경쟁에 긴장이 되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10년 동안 꾸준히 아침 수영에 길들여진 까닭에 이제는 수영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병이 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치밀한 계획을 짰다. 무엇보다 시간대 선정이 중요한 법. 사람들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 아침수영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직장인이고, 출근을 하기 위해선 적어도 7시 30분 이후에는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섰다. 그 시간을 노리자.

예상은 적중했다. 대기 시간 없이 곧바로 수영장에 입장했다. 수영장 풍경은 코로나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평소 같으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을 샤워장은 나를 포함한 단 두 명만이 사용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다급하게 수영복을 갈아입을 이유가 없었다.

천천히 수영복을 갈아입으며 찬찬히 샤워장을 살폈다. 샤워장이 이렇게 환했던가? 시끄러운 수다로 천장이 왕왕거렸던 샤워장만 경험했던 나로선 고요함이 감도는 샤워장이 낯설었다.

낯선 풍경은 수영장에서도 이어졌다. 50m 레인 하나에 한두 명만 있는 풍경이 마치 개인 전용 풀장을 연상시켰다. 풍덩~ 평영으로 잠시 몸을 푼 뒤 자유형으로 물살을 갈랐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반사된 물은 하늘색과 닮아 있었다. 수십 명이 줄을 서서 앞사람 발꿈치만 죽어라고 쫓아다니며 뺑뺑이를 돌던 강습 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물의 감촉이 느껴졌다. 말랑말랑한 젤 같은 느낌이랄까. 뒷사람이 쫓아오지 않을까, 미친 듯이 속력을 내는 대신 오로지 내 페이스에 맞게 수영을 하니 마음이 한결 착해졌다. 그동안 '나는 운동을 한 걸까? 경쟁을 한 걸까?'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다고 좋은 게 아니구나. 수영경력 10년 만에, 코로나의 불편함이 의외의 깨달음을 주었다.

지난주 서울에서 셋째 언니 아들, 그러니까 나의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하객이 50명으로 제한된 결혼식. 우리 집만 해도 딸 8명에 조카까지 합치면 버스 한 대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가족이기에 하객 50명 제한이 좀 난처했다. 양가 가족과 조카 부부의 친구 몇몇만 참석해도 50명 넘치는 상황. 외부 하객은 어느 누구도 초대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성대한 아들 결혼식을 꿈꾼 언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덩달아 우리 가족도 시무룩했다. 결혼식 당일까지 가족 단톡방에는 위로와 아쉬움의 말들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곧바로 결혼식장에 도착. 이후 예식을 보고 다시 버스에 탑승. 코로나에 걸릴까봐 오고갈 때 밥은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에 벌써 지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어느 누구도 상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스몰 결혼식. 그렇게 조카 결혼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결혼식 다음 날, 가족 단톡방에서는 결혼식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말들이 이어졌다. 결혼식이 생각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적으니까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더라, 뒤 타임에 결혼식이 없어서 쫓기지 않아서 여유로웠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식 전, 하객 50명 제한에 불만이었던 가족들은 작은 결혼식도 나름 괜찮다는 평가를 내렸다. '결혼식에 사람들이 꼭 많아야 제 맛일까?' 작을수록 의미는 더 깊은 법. 코로나가 준 의외의 깨달음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