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달린 농사…정치는 국민이 하늘
빙자한 마음·욕심 손으로 가릴 수 없어

계절이 변화하는 것이 눈에 잡힐 듯한 요즘이다. 엊그제 패 오르던 벼는 어느새 누렇게 변했다. 한 사흘 밤새 기온이 쑥 내려갔는가 싶더니 감잎부터 우수수 날리기 시작했다. 주위가 변하는 것을 감지하고서야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가을 채비에 바쁘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한갓 한 자리에서 가만히 변화를 받아들이는 식물에게도 배울 것이 있는 것이다.

시골 노인네들은 말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농사는 하늘에 매였다며 추수는 날씨가 먹게 해 주어야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인가 올 추수는 예년보다 못할 것 같다. 긴 장마에 연이은 태풍에 과일들은 채 여물기도 전에 잎들을 떨구고 몇 남지 않은 열매도 탐스럽지 않다.

거기에다 코로나19까지 서슬이 퍼래 있으니 굳이 시골 노인네들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하늘에 매였다는 농사를 짓는 심정은 여간 하늘이 무서운 게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꾸짖는 하늘의 뜻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농사꾼이라 자칭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살아가는 삶의 이치가 농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농사는 농부가 흘린 땀을 배신하지 않는다. 추수가 하늘에 매였다고 하지만 열심히 지은 농사는 그래도 남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손의 굳은살 속에 경험이라는 손금을 새기게 해준다. 열심히 했음에도 안 된 것이야 낙담스럽지만 다시 기약할 시절이 있기에 또 참을 만한 것이다. 작은 경험이지만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고단함과 바쁨을 핑계로 그냥 건너뛰었더니 꼭 탈이 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는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지만 억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욕은 불금이 딱 맞다.

초짜 농사꾼이 생각하기에는 정치도 농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심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면 그로써 성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정치는 진심은 없고 주의 주장만 있는 모양새다. 한쪽에서는 칭송인데 한쪽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아우성이니 나라가 잘될 리가 없다.

과거 책에서 진리를 탐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들과 사건들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첫 번째가 교조주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남의 나라 땅에서 절치부심하면서도 이념에 따라 갈라서서 죽임을 서슴지 않아서 끝내 제 손으로 독립을 일굴 수 없었던 통한의 역사를 보았던 것이다. 주의 주장과 이념에 사로잡히면 그것 자체가 욕심인 것이다. 욕심 앞에서는 나만 보이고 너와 우리라는 개념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작물은 금방 알아챈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 법률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빙자한 행위와 그 마음까지 감출 수는 없다. 그런 행태로 국민을 다스리고 국가를 경영하면 반드시 탈이 나는 것이고 이미 탈은 곳곳에 터져 나오고 있다.

농부는 바란다. 올해는 해운이 좋지 못해 풍년가를 울리지 못해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아지기를 소원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무릎을 맞대고 어떻게 하면 국민이 잘살 수 있는지 불철주야 살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농사는 하늘이 돌보지만 정치는 국민이 하늘이다. 하늘을 속이고서 정치가 될 턱이 없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들이나 모자라는 재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들이나 국민 무서운 줄 알고 부디 내년 요맘때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 정치가 농부만도 못해서야 국민이 비빌 언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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