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속 표현, 전쟁·군대 용어 가득
긍정적이고 부드럽고 객관적인 말 쓰자

혈세, 본방 사수, 취향 저격, 소금 투하, 직격탄, 집중포화, 추억 소환, 용병, 토종(선수).

이 표현들은 신문 등 인쇄 매체와 TV 등 전파 매체에서는 비유나 강조 수준을 넘어 이미 일상화되었고 SNS나 일반인 대화에서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날카롭고 무지막지한 표현에서 짙은 피 냄새, 화약 냄새, 범죄 냄새 심지어 짐승 냄새를 맡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면 지나치게 예민한 후각 탓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혈세'는 가혹한 조세, '사수'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 '저격'은 일정한 대상을 노려서 치거나 총을 쏨, '투하'는 던져 아래로 떨어뜨림, '직격탄'은 곧바로 날아와서 명중한 탄환이나 포탄 또는 폭탄, '포화'는 총포를 쏠 때 일어나는 불, '용병'은 지원한 사람에게 봉급을 주어 병력에 복무하게 함, 또는 그렇게 고용한 병사, '소환'은 법원이 피고인, 증인, 변호인, 대리인 따위의 소송 관계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공판 기일이나 그 밖의 일정한 일시에 법원 또는 법원이 지정한 장소에 나올 것을 명령하는 일, '토종'은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라 풀이하고 있다.

국어사전이 법전도 아니고 모든 단어를 꼭 사전에 얽매어 구사해야 할까만 방송 프로그램이 뭐 대단하다고 시청자 목숨을 요구하며, 나의 취향은 왜 그들의 총질이나 구타 대상이 되어야 할까? 감자볶음에 넣는 소금은 왜 굳이 던져야 하며, 상대 당 대변인 논평은 꼭 탄환, 포탄이나 폭탄으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추억은 왜 명령에 의해 불려 나와야 하며 심지어 이 땅에서 태어난 운동선수는 인간이 아닌 동식물 취급을 받아야 할까? 그렇게 표현하면 의미가 더 명확해질까 아니면 대중의 속이 시원해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언어도 변한다. 세태를 반영하기에 잘 살펴보면 변화의 배경을 알 수 있고 또 방향성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살벌하고 거친 표현들이 횡행하는 배경에는 현재 우리들의 삶이 팍팍한 탓도 있지 싶다.

그렇다고 말과 글이 앞서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는 생각과 감정, 어떤 것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수단이지만 때로는 언어가 생각과 감정, 태도를 부추기거나 강화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일부러 목청 높여 큰 소리로 이야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대중 매체 영향력은 상당히 크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 몸짓 하나, 말 하나, 글 한 줄이 어떤 파문을 불러올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혹시 세상을 더 혼탁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하게 전염되는 것이 '한숨'이고 그 다음이 '하품'이며 불행하게도 가장 느린 것이 '웃음'이라 하지 않던가?

긍정적이고 부드럽고 객관적이며 적합한 표현을 쓰도록 노력할 일이다. 대중 매체가 거짓말을 만들거나 확대 재생산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해괴한 시대에 너무나 순진한 주문인지 모르지만.

대중 매체에서 스포츠를 담당하는 아나운서, 해설자,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토종인가 용병인가?", "토종이라면 순종인가 아니면 잡종인가?"

어떤 일을 하고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사람을 '프로'라 한다. '프로'는 자기 일에 대한 능력, 태도, 노력이 아마추어와 달라야 한다. 사람을 짐승이나 식물과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과 그런 표현에 무심한 태도 그리고 적합한 단어를 구사하려는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면 자질을 의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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