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9년에 지은 정자 벽한정…박인 선생 학문 연구하던 곳
서쪽 협문 밖 경치 아름다워
영상테마파크선 추억 시간여행…이주홍어린이문학관엔 아이와
황강을 따라 좌우로 펼쳐진 합천군 용주면(龍州面)은 '용의 고장'이라 불린다. 과거 조고개면(助古介面)이라 불리었으나 1895년(고종 32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바뀌었다.
용의 고장답게 의룡산, 소룡산, 용덕골 등 유독 '용 용' 자가 붙은 곳이 많다. 용문정과 황계폭포, 합천호를 중심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철쭉군락지를 자랑하는 황매산군립공원, 합천호를 따라 핀 벚꽃이 백리에 이른다는 백리 벚꽃길 등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합천 우곡리 폐사지(경남기념물 제258호), 합천 벽한정(경남문화재자료 제233호), 합천 용암서원 묘정비(경남문화재자료 제302호) 등 문화재도 빼놓으면 섭하다.
요즘 용주면은 합천영상테마파크가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졌다. 2004년 건립된 국내 최대의 오픈세트장(드라마·영화 따위의 촬영에 쓰기 위하여 야외에 꾸민 장소)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암살>, <써니> <택시운전사> 등 190편의 영화, 드라마가 촬영됐다. 넓이가 2만 2000평으로 꽤 넓다. 무작정 걷다보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출발 전 합천영상테마파크 지도를 꼭 챙기길 추천한다.
1920년~80년대 거리가 현실감 있게 재연되어서 추억 사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 것처럼 옛 서울거리가 펼쳐져 있기도 하고, 군데군데 음식점과 카페, 숙박시설이 있어 잠시 숨을 돌리기도 좋다. 걷는 게 힘들다면 전기로 움직이는 마차, 인력거, 모노레일, 트램을 타도 된다. 테마파크 구경을 다 했으면, 바로 앞 황강을 따라난 덱길을 거닐어도 좋다. 이 길은 사진가들이 이른 아침 안개 낀 황강과 조정지댐(보조댐) 운치를 담으려 즐겨 찾는 사진 명소다.
합천영상테마파크 가까이에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이 있다. 아동문학가인 향파 이주홍(1906~1987) 선생은 합천 출신으로 부산 동래중 교사, 부경대 전신인 부산수산대 국문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전국 문예지인 <문학시대>를 창간하고 부산아동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문학관이 전국에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부산(사립문학관)에 있고, 다른 하나가 합천에 있는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이다. 이곳은 국내 최초 공립어린이문학관이다. 문학관은 최대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었다. 호박, 기린 등 커다란 조형물이 관람객을 반긴다. 아이들이 이주홍 선생의 동시 6편을 퍼즐로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동시를 읽을 수 있으며 직접 시를 낭송하고 녹음해 파일을 재생하거나 이메일로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황강을 따라가면 용주면소재지다. 면소재지로는 소박한데, 면사무소 입간판 위에 황금색으로 만들어진 용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면소재지를 지나면 경남문화재자료 제233호 합천 벽한정이 있는 손목마을이 나온다. 고령 박씨 집성촌이다. 벽한정은 고령 박씨인 무민당 박인(1583∼1640)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이다. 박인 선생은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향리에서 산림처사로 지냈다. 이 정자는 인조 17년(1639년)에 건립됐으며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벽한정에는 '문장'(門長·문중에서 항렬,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과 동네 어르신들이 항상 계신다.
벽한정 서쪽 협문 밖 풍경이 가히 아름답다. 황강과 황계폭포의 합류지점으로 탁 트인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실제 바위에 '광풍대'라고 새겨놓은 것을 보니 예로부터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으로 유명했나보다. 이태근 화백이 이곳을 보고 "화폭으로 옮기고 싶을 정도"라고 했단다.
용주면에서 만난 사람들
박지석(53) 씨는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에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관광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게 그의 주된 업무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군내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 명소다. 지금이야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1만 명을 웃도는 관광객이 테마파크를 찾았다고 한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근현대사 배경의 영화 촬영장부터 실제 청와대를 본떠 만든 세트장, 청와대 세트장으로 이어지는 모노레일까지 볼거리가 많았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이유를 알 만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2004년도에 조성됐다. 조성 이후 지금까지 굉장히 운영이 잘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하루에만 매표 인원이 3000명을 넘었다. 코로나 전까지는 주말 관광객이 1만 명씩 왔다. 테마파크 자체 수익만으로도 아무런 지원 없이 충분히 운영할 수 있을 정도다."
테마파크를 품고 있는 용주면만의 매력에는 어떤 점이 있을까. 그는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며 볼거리가 넘치는 것이 지역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용주면에는 테마파크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는 물도 있고 산도 있다. 자연경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는 지역이 용주면이다. 경치가 정말 좋다."
용주면 손목리에서 만난 박영수(57) 씨는 손목마을 이장이다. 합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역 토박이인 그는 창원과 마산에서 27년간 경찰관으로 일했었다. 지금은 1996년에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33호로 지정된 벽한정을 관리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합천으로 돌아왔다. 벽한정에서 유사(총무) 업무를 본 건 올해로 5년째.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이곳에 머물면서 무일푼으로 문화재 관리를 하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문중에서 장손이었다. 평소 벽한정에 대한 애착이 많으셨다. 누군가가 계승해줬으면 좋겠다는 유지가 있으셨다. 유사 업무를 보러 합천에 들어오게 됐다. 공무원 연금이 나와서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그에게 용주면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는 용주면을 이렇게 자랑했다. "합천에는 관광요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용주면에 문화재급 관광요소가 몰려있다. 용주면 초입에는 벽한정이 있다. 역사적인 기틀이 마련돼 있는 곳이다. 테마파크, 루지체험장, 합천항공스쿨도 용주면에 있다.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