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생계비 마련 급급…안정된 일터 찾기 어렵고 경력·정보부족 늘 불안감
국회 보호종료아동 조사서 퇴거 후 취업자 26% 불과…절반 이상 단순노무 업종

스무 살, 만 19세가 되면 누구나 법적 성인이 됩니다. 설레는 마음 한편에 혼란과 두려움을 안고 성년을 맞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위탁 시설·가정에서 자란 보호대상아동들입니다. 이들은 스무 살 즈음에는 시설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자의'와 상관없이 '자립'해야 하는 이들이 사회에 무사히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경남도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 답을 찾아봅니다. 보호대상아동의 자립기를 한 달에 한 번,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원치 않았던 자립 = 김유미(22) 씨는 현재 양산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음식 세팅, 전화주문, 설거지, 포장, 고객불만 대응 등이 그의 몫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월급은 들쭉날쭉하다.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고 싶지만 당장 쉽지 않다.

유미 씨는 지난해 2월 다니던 대학에 자퇴서를 냈다. 빨리 취업하려는 욕심에 진학했던 치위생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습할 때마다 '내가 실수해서 뭔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몸이 굳었다.

대학을 자퇴하면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지내왔던 양육시설에서도 나와야 했다. 보호대상아동은 대학에 다니면 24세까지 시설에 있을 수 있지만, 자퇴하면 곧바로 퇴소해야 한다. 유미 씨는 어쩔 수 없이 자립을 준비해야 했다. 캐드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려 했지만 경력 없는 신입을 뽑는 곳은 많지 않았다. 겨우 일하게 된 출판사에서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고, 다른 회사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가 식당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이다.

유미 씨에게는 꿈이 있었다. 어린 시절 만화에 푹 빠진 그는 그림 그리는데 재미를 붙였다. '만화왕국'인 일본에 관심을 두고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이쪽 길로 나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구체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학교 선생님이나 시설 친구들과 상의해도 한계가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관련 직종 종사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답장은 거의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꿈을 간직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커졌다. 유미 씨는 "보호대상아동들은 꿈을 가져도 주위 사람에게 물어본 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캐드나 일본어를 활용할 수 있는 회사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꿈' 보듬어 줄 사람 있었다면 = 권유나(22) 씨는 부산에 있는 물류보관창고에서 일한다.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오전반,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는 새벽반에 번갈아 나간다. 출근하면 8시간 동안 정해진 상품을 상자에 담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매일 일할 수도 있지만, 한 번 일을 갔다오면 온몸이 아파서 1~2일은 쉰다. 하루 일당은 7만 원 남짓. 이렇게 일해서 손에 쥔 60~70만 원과 국가에서 주는 자립수당 30만 원이 그의 한 달 수입이다.

유나 씨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친구들의 강아지를 돌보다 애견미용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사전준비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자립한 뒤 동물병원에 취업한 적도 있었지만, 경력과 자격증 부족으로 오래 일하지 못했다. 자격증이 없어 면접을 볼 때마다 경쟁자들에게 밀리기 일쑤였다. 애견미용 자격증을 따려면 학원에 다녀야 했는데, 한 달에 50만~60만 원씩 다 합쳐 수백만 원이 들었다. 일용직으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유나 씨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지금은 퇴근 후에 동영상으로 애견미용을 공부하고 있다. 조금씩 돈을 모아 학원비도 마련해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유나 씨는 "조금씩 저축하고 있지만, 과연 언제 모을 수 있을지, 일을 안 하고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며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준비했었다면 좋았겠지만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부분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 지난 4일 양산시 한 카페에서 만난 보호종료아동 김유미 씨가 자신의 자립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지난 4일 양산시 한 카페에서 만난 보호종료아동 김유미 씨가 자신의 자립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이창우 기자

◇꿈 뒤로한 채 취직 = 아동자립지원단이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보호종료아동 가운데 26.7%가 취업했다. 이 중 58.5%는 서비스 판매직 혹은 단순노무 업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올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보호 종료 20대가 희망하는 진로는 1순위가 뷰티·미용·애견이었다. 디자인·예술, 판매·서빙·매장관리가 그 뒤를 이었다. 별다른 자본과 준비 기간 없이 바로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을 선호하는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취업에서조차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퇴소한 6258명 아동 중 26.2%가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다.

보호대상아동이 준비 없이 사회로 나가는 일이 없으려면 심도 있는 상담을 해줄 '자립 지원 인력'이 더 필요하다. 현재 아동양육시설 한 곳당 자립 지원 전담요원은 1명이다. 수십 명의 아이들을 혼자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 공동생활가정은 자립 지원 전담요원을 둬야 한다는 규정이 아예 없다. 위탁가정 보호아동은 각 지역 가정위탁지원센터가 맡는데, 기본적으로 전문요원 1명을 배치하고, 15세 이상 아동 수가 100명을 초과할 때마다 1명을 추가로 둬야 한다. 현재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 자립지원 전담요원은 2명이다. 올해 12월 기준 경남 가정위탁 자립 지원 대상(만 15세~연장보호)은 465명으로, 규정에 따르면 자립 지원 전담요원 4명이 있어야 하지만 채우지 못한 상태다.

◇명문화된 조례안 실현, 지원 대상 범위 늘려야 = 2018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에 따르면 경남지역 보호종료아동은 전국에서 5번째로 많은 187명(아동양육시설 80명·공동생활가정 5명·가정위탁 102명)이다.

경남은 2017년 '경상남도 아동·청소년복지시설 퇴소청소년 등의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도지사가 퇴소 청소년에게 △주거·생활·교육·취업 지원 △금융 상담 △치료·재활 △정서·심리 지원 사업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정책 제안으로 해당 조례 개정을 준비 중인 이옥선 경남도의원은 "조례에는 아동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지역 주민, 시민단체, 공공기관, 아동복지 전문가 등으로 경남도 퇴소 청소년 등의 자립지원협의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했지만 실제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자립지원협의회 같은 공적 소통창구에 아동들이 직접 참여해서 당사자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제안한 조례개정안을 보면, '보호종료 아동'뿐 아니라 '보호대상 아동'도 조례에 포함하도록 했다. 보호 중일 때 다양한 경제적·인적 지원사업으로 꿈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고, 보호 종료 후에도 두 번째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부산·대구·경북·제주·울산 등 시도는 이미 보호대상아동까지 포괄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한편 경남도는 오는 2021년 보호종료 청소년 자립통합지원센터를 세운다. 도 관계자는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 등 보호형태별로 통합적인 사례관리가 부족했던 측면이 있어 전담기구를 두려는 것"이라며 "그동안 경남에 없었던 자립생활관도 도내 2곳에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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