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이어진 시문예지 발간·예민한 성찰 담아
〈경남시조〉·〈시향〉 공영해·문순자·홍진기 시인 특집

코로나 대유행 시대에도 꾸준히 발간되는 시 문예지들. 끊임없이 삶을 들여다보는 예민한 시인들이 있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경남시조>는 표지가 확 바뀌었다.

경남시조시인협회(회장 임성구)가 1년에 한 번씩 발행하는 문예지로 이번이 제37집이다.

제23회 경남시조문학상 수상자 공영해 시인, 제4회 노산시조문학상 수상자 문순자 시인을 특집으로 다뤘다.

(사)국제시조협회 민병도 이사장의 제28회 경남시조 문학강연회 주제발표문도 담겼다.

나머지는 회원 시조로 채워졌는데, 저마다 성찰 방식이 돋보인다.

김성영 시인은 '해변에 밀려온 유언'이란 시조를 통해 코로나로 새삼스레 관심이 쏠린 환경 문제를 다룬다.

"내 뱃속의 쓰레기는 너희들의 양심이다/ 형형색색 오묘하게 시공을 합성하며/ 온 누리 휘감아 덮고 스며들어 온 손길// 수지맞다 받아먹고 울긋불긋 병들어/ 파도들 숨이 지고 내 새끼도 죽었다 (중략) 가져가라! 요사하고 헤픈 너희들 선심/ 빛인 줄 알고 빚을 받은 슬픈 우리들 진심/ 모조리 되돌려주마 내 시체는 이자다"

김명희 시인의 시조 '아버지와 아들'을 읽으며 어쩌면 인간의 지나친 확신과 자신감이 지구를 병들게 한 게 아닐까 반성해 본다.

"살아보니 확실한 건 없어. 연습의 연속이야./ 아비가 남긴 말에 아들도 답을 찾네/ 쇠뜨기 고집스레 박힌 굴신 않는 습관처럼"

이런 시인들의 마음을 알아챘다는 듯 경남시조시인협회를 후원하는 경남약사회 최종석 회장은 이렇게 축사를 적었다.

"어느 지치고, 힘든 날, 고개를 숙이고 걸을 때 발밑 보도블록 사이에 자라는 잡초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항상 지나다녀 밟히게 되는 보도블록 잡초는 오늘도 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힘들지만, 인류는 이 순간도 강인하게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 동인 '포에지 창원'이 동인지 <시향> 17호를 냈다.

지난해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수상자 홍진기 시인을 특집으로 다뤘다.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주는 상이다.

홍진기 시인의 수상소감에는 예의 겸손함과 소탈함이 그대로 담겼다. 글은 젊은 시절 첫 아이를 낳은 아내에게 며칠을 두고 맛없는 미역국을 끓여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확인 삼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더니 아! 삼킬 수가 없을 정도로 여엉 아니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철없이 나는 그래도 좀 먹으라며 우겨 산모를 울린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가 마치 그때 그 미역국처럼 독자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떠다미는 게 아닌가 하는 게 홍 시인의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아마도 오늘날 내 시가 선량하고 가슴 따스한 독자에게, 그젯날의 내 미역국처럼 내뱉기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 때문에 떠오른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런 마음이라면 애초에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회원 작품을 보니 요즘 같은 불편한 상황조차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가 여럿이다.

예를 들어 김시탁 시인의 '간격'이란 시가 그렇다.

"곡식도 드문드문 심어야/ 햇살 들고 바람길 트여/ 잘 자라고 열매 튼실해서/ 수확 풍성하다는 걸 농부는 안다// 사람도 적당히 떨어져 살아야/ 모난 구석 안 보이고 잦은 다툼 없어/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붙어 살아본 사람은 안다"

정선호 시인의 '그해 봄날의 유감'은 더 나아가 코로나 이후를 희망차게 담아낸다.

"그해 봄, 유행병으로 사람들 더 가까워졌으며/ 서로 경쟁하는 사랑을 하게 되었지요/ 나라와 민족 사이에도 반목보다는 도움을,/ 맑고 깨끗한 지구를 함께 만들기로 약속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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