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인구 고려없이 4억씩 일괄 투입·기획안 접수 기간도 빠듯
미술계 "연구만 2개월은 필요"…'예술성 〈 일자리' 주객전도 우려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 동네 미술'을 둘러싼 사업 실효성 우려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공미술 개념을 내건 사업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술인 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표현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거 너무 급한 거 아닌가? = 우리 동네 미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 228개 지자체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미술계 종사자들에게 지역 문화예술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돈을 주는 미술인 지원사업이다. 사업 참여자로 선정되면 작가들은 지역에서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벽화를 그리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미술계의 우려는 크게 공공미술이란 개념과 지역 특성에 맞는 작품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 지난 7~9월 사이에 진행된 도내 18개 시군별 사업 공고 기간을 살펴보면, 시군 대부분이 사업 공고를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2주일까지만 진행했다.

신청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일은 많다. 사업 참여희망 작가들은 자신을 포함해 팀을 꾸린 뒤 작품 설치와 사후 관리계획 등을 담은 기획안을 해당 시군에 제출해야 한다. 시군은 전문가 심사를 거쳐 기획안을 선정한다. 현장심사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 사업에 참여할 작가팀도 정한다. 팀 선정과 사업계획이 최종 확정되면 작가들은 내년 2월까지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 우리 동네 미술은 지난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사업 기간이 예정돼 있는데, 공모 기간을 포함하면 남은 사업 기간은 앞으로 5개월 정도다.

이를 두고 미술인들은 "공모기간이 최소 두 달 이상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지역에 가서 직접 봐야 하고 관심 있는 작가들과 함께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충분한 작품 연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작품은 결국 '흉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우후죽순처럼 설치된 데다 기존 공공미술 작품 사례를 볼 때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설정한 작품 보존기한은 최소 3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작품 철거와 폐기가 가능해진다.

천원식 경남미협 회장은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진행돼야 할 사업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도시 흉물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연말 정도가 되면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대식 진해미협 회장은 "작품 사후 관리는 작가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관리를 하는 곳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체 사업비 중에 사후 관리비를 따로 책정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각 지자체가 사후 관리를 담당하고 작품에 대한 사후 보수만 작가들이 3년간 맡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작품 소유권을 가진 지자체가 작품 관리를 직접 담당하되, 작품을 만든 주체인 작가가 자신들이 만든 작품에 대한 보수를 일정 기간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큰 틀에서 정해진 방침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관리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사후 관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관계자는 "예산을 따로 편성해서 전체적인 사후 관리를 지방자치단체가 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며 "수리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 사후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공지하고 있지만, 현재 관리계획이 정해지진 않았다"며 "사업 유형과 여건이 지자체별로 달라서 추후에 관리 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 16일 창원 성산구 상남동 한 빌딩 앞에 세워진 조형물이 나무와 풀에 가려져 있다./최석환 기자
▲ 16일 창원 성산구 상남동 한 빌딩 앞에 세워진 조형물이 나무와 풀에 가려져 있다. /최석환 기자

◇공공성 충분하다면서도 선정팀 공개는 안 해 = 문체부는 지자체별 사업비를 동일하게 책정했다. 인구가 많건 적건 관계없이 한 지자체당 투입되는 사업비는 4억 원이다. 미술계 현장에선 똑같은 금액이 사업비로 책정돼 아쉽다는 반응과 공모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주연 창원미협 회장은 "인구가 다른데 같은 금액이 투입됐다"며 "미술인을 지원하는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시군 단위로 인원수나 미술인 규모를 고려해서 차등 지급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마산미협 회장은 "마산, 창원, 진해에선 인구 100만이 넘는 곳인데 우리는 왜 4억만 주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공정하게 사업을 하려면 각 시군에서 사업 공모를 할 것이 아니라 경남도 한 곳에서 전체 공모를 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미술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문체부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지난 10일 보도자료에서 문체부는 "3차 추경예산 편성 단계인 5월부터 사업을 준비했고, 미술계 현장 및 지자체와 소통하며 사업계획을 마련했다"며 "지난 7월 3일 추경 확정 이후에는 지자체 사업안내서 배포, 지역미술인 대상 권역별 공공미술 교육 등을 진행하며 이 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악하고 흉물스러운 작품이 양산될 조짐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공공미술 프로젝트 자문위원회와 지역별 자문위원회를 운영해 작품의 예술성과 실행 가능성 등을 보완해나갈 수 있도록 이미 조치했다"며 "지역별 특색에 맞는 다양한 공공미술 유형이 지자체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모범사례를 발굴·공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문체부나 경남도 모두 작가팀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지자체별 프로젝트 내용을 공개할 계획은 수립하지 않은 것이다. 성춘석 민족미술인협회 경남지회장은 "사업 내용을 공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내용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원칙이지만, 공무원들이 졸속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15일 기준으로 이미 도내 18개 시군 중 사천시를 제외한 17개 시군이 37명 내외로 꾸려진 작가팀을 1~2팀씩 선정했다. 이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문체부로 전달된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안이 확정되면 작가팀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이들의 활동이 시작될 것으로 문체부는 보고 있다.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관계자는 "모든 사업이 종료되었을 때 프로젝트 우수 사례를 따로 나눠주거나 아카이브를 구축해 공개하는 일이 있을 순 있겠지만, 작가팀이 어떤 프로젝트을 진행하는지 알릴 계획은 아직 없다"며 "전국 228개 지자체별 특성을 반영해 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공개할 계획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남도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프로젝트 변동 가능성이 있어서 현재로선 공개가 어렵다"며 "추후 최종안이 나와도 공개할 계획은 아직 없고, 공개 여부는 추후 각 시군과 협의를 통해 결정해보겠다"고 말했다.

▲ 16일 상남동 빌딩 앞에 있는 조형물이 기울어진 채로 방치돼 있다.  /최석환 기자
▲ 16일 상남동 빌딩 앞에 있는 조형물이 기울어진 채로 방치돼 있다. /최석환 기자

◇예술인 지원사업, 해법은? = 문체부와 각 지자체가 해야할 일은 분명하다. 작품 제작 실행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악한 작품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사업계획서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작품 사후 관리 방안도 구체적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강주연 창원미협 회장은 "지정된 팀들의 작품 사업계획서를 심도있게 보완해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선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에 전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2월로 정해진 사업기간을 추가로 늘려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지적한다. 홍 평론가는 "사업 기간이 1년 더 늘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공공미술물다운 작품이 나올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통틀어서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작가들이 시간적 구애를 받지 않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관계자는 "지자체별 상황에 맞춰서 일정이 조정될 여지는 있다"며 "사업 목적과 상황에 맞게 잘 조율해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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