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국어책임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국어기본법 10조에 규정된 국어책임관 제도는 형식적으로만 시행되다보니 사업을 주관하는 담당 공무원들에게도 생소하기 그지없는 제도로 전락하였다고 한다.

경남도에서 국어책임관이 지정된 기관은 중앙 행정기관 및 소속 기관 118곳이다. 광역 및 기초 지자체를 포함하여 경남 도내에만 118명의 국어책임관이 있다. 하지만 기관 어느 부서에서 누가 업무를 맡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국어책임관 제도가 운영되는 게 다반사이다 보니 이 제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름만 있고 실속도 없는 국어책임관 제도를 그래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배타적인 자세로 타민족을 대하면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만 우월하다고 우기는 협소한 국수주의적인 태도로는 전 지구적인 시장과 문화 환경에서 생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현재의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 놓여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독일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란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라고 말하였듯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내용과 방법이 얼마나 타당하고 적당한지를 알아 볼 필요는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식음료와 생활문화가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처럼 유통되고 거래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인종과 민족에게도 얼마든지 문화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 다른 국가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 음식인 김치나 김밥은 이젠 하나의 고유명사로 통용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애당초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이나 음식들을 외래어 그대로 사용하는 걸 잘못이라고 단순하게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보존하고 고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공공기관은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려고 해야 한다. 외래어로 범벅이 된 표어나 구호를 이젠 우리말과 글로 바꾸려는 성의와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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