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담은 그 문장 속엔 권력 쟁탈 욕망
정은경 고발한, 제 배 채우려는 자 뉜가

성종이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비 덕종이 죽었다더라. 천하를 얻었지만, 참척의 변을 당한 세조의 심경은 어땠을까. 세조는 손자를 궁에 데려다 키웠다 한다. 권력 취탈을 위해 모질게 달려온 할배 세조는 자식의 이른 죽음을 죗값으로 여기며 그 자식이 떨구고 간 손자를 긍휼과 회한의 심사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지만, 신하들을 예우하고 상벌을 다룸에 신중하고 명확하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성종의 반듯함은 모다 그 할배가 심은 자양의 소산이 아니었겠는가.

성종은 제 정치 세력의 힘을 적절히 배분해 법률 역사 국방 의례를 정비하고 국가 운영의 기본을 바로잡아 백성의 생업을 편하게 해주려 애쓴 정치인이었다더라. 게다가 씨 뿌리기에도 옹골져 무려 12명의 공식 각시로부터 28명의 종친을 생산하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그러므로 불과 서른여덟 나이를 살다 죽은 이 왕의 치세 시기가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시절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더라.

오르막이 있으니 내리막이 있는 것이 고금을 막론한 세상의 이치이런가.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일족이 멸문당하는 재앙을 겪는 조선 중기의 피바람이 바로 그 평온했단 시절에 뒤이어 벌어지니 말이다. 연산군으로부터 시작해 명종 즉위까지 다섯 차례의 옥사로 이어진 '사화' 스토리는 굳이 왕조실록씩이나 뒤지지 않더라도 온 국민이 아잇적부터 반복 학습한 생생한 역사다. 주말연속극 월화드라마 궁중 비사 등의 이름으로 변주된 안방극장의 마르지 않는 샘이 '폐비 윤 씨'로부터 비롯된 그 참혹한 '사화'의 변주였다. 그 씨앗을 성종이 뿌린 셈이니 짓궂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사화'의 시작은 대개 갈고닦은 유려한 문장의 틀에 싸여 직조된 절절한 고소로 시작된다. 상대방을 제거할 때도 임금의 재가를 거치는 합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다. 겉으로는 굽은 것을 바로잡겠다는 정치적 명분과 대의를 담았다 하나 실제로는 살의를 품은 참소의 과정이었고 극단적으로는 '암살'의 다른 형태였다.

검찰 개혁을 주창하던 교수 '조국'이 법무장관에 임명되던 작년 8월 시작된 광풍을 멀찍이서 치어다보면 '참소'로 점철된 그 연속극 속 훈구·사림의 전쟁과 무에 다를 바 있으랴 싶다. 기득권의 근거를 위협하는 정적을 주살키 위해 장관의 삼족을 소환해 치죄하며 벌인 그 소동은 주리를 틀어 유혈 낭자한 물리적 고문만 없다뿐 대상 세력을 멸절시키고자 하는 의도와 과정은 그것과 진배없었다.

연이어 법무장관에 취임한 강골 정치인의 자식을 두고 시방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 또한 그 시즌의 후속임이 자명하다. 보수정당·신문회사·방송기업·검찰·개신교 등 동색의 덩어리가 연합을 이룬 진영의 권력을 향한 기세가 자못 시퍼렇다. 어쩌랴.

그러나 정은경 질본청장이 살인죄로 고발당하여 서울중앙지검이 그이를 수사하게 됐다는 보도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얼척이 없다. 8·15 집회에 참여한 이른바 보수단체의 소행이란다. 잠시 눈을 붙이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긴급 상황실을 지키며 현황을 점검하고 매일 오후 2시 차분하고 솔직한 상황설명으로 국민을 안돈시키던 그다. 아홉 달 만에 백발이 된 수척한 그이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돌림병을 견뎠는데 방역소홀의 살인자라니. 이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개천절 한글날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 을러댄다.

사람이 죽고 장삿길이 막혀 소시민이 도탄에 빠진 역병 창궐의 와중에도 알량한 제 배를 채우려 나라를 흔드는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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