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정 담긴 고흐의 구두에 가슴 저려
자기 길을 열심히 걷는 사람들 보며 위안

새벽 운동을 가다가 가끔 승강기에서 택배를 하거나 신문을 배달하는 젊은이를 만난다. 사회는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듯 어둠과 정적뿐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 가면서 대부분 사람은 피로감을 느끼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병원의 먼 불빛과 어둠을 뚫고 양손 가득 택배 물건을 들고 바쁘게 뛰어가는 그들과 동네마다 환하게 불 밝힌 편의점 안의 젊은이를 보면 안도감과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상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나마 혼란스럽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신발을 보며 고흐의 '구두'라는 그림이 문득 생각났다. 몇 년 전 고흐의 전시회에서 만난 한 그림 앞에서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깊이를 느꼈다. 한 점의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슴에 오래 남아서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그림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에 남는 그림도 있다.

고흐는 삶의 여정을 흙 묻은 구두에 비유해서 그렸다. 신을 대로 신어서 너덜너덜하게 망가진 구두는 그 자신의 모습이라고 비유한다. 낡고 일그러져버린 신발의 표정을 보면서 이 정물이 생명 없는 단순한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림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삶의 쓸쓸함과 고단함의 무게에 가슴이 저려온다.

고흐는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 브르통을 보기 위해 그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차비가 없던 고흐는 일주일 동안 120㎞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브르통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그의 작업실 앞에서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어 집 주위만 맴돌며 망설이다 고흐는 다시 먼 길을 걸어서 돌아와 그의 해지고 낡은 구두를 그렸다고 한다. 고흐는 평생 이때의 쓰라린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하는데, 고흐의 구두에는 그런 그의 인생 역정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의 여정을 낡은 구두로 비유해서 그린 구두의 표정을 보면 인간의 고된 삶과 노동을 느끼게 한다. 구두에는 노동을 마친 자의 지치고 고단한 모습이 고즈넉하게 담겨 있다.

고흐에게 구두는 하나의 사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의 자화상인 것이다.

누렇게 기울어진 저녁 햇살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구두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지친 하루를 이끌고 온 우리의 신발에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오래 신어 닳은 신발에는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얼마 전에 구입한 새 신발에도 설렘이 담긴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요즘 대부분 사람은 코로나19로 일어나는 상황과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 세계의 기후변화에 이상을 느끼며 희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인생의 힘든 순간이 있을 때 잠시라도 고흐의 낡은 구두를 생각하면 조금의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의 길에서 부닥치는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병에서 회복되는 내일이면 그 고통도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라고 말한 고흐가 생각나는 가을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열심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신발을 생각하며 우리집 현관에 놓인 가족들 신발을 가만히 매만져본다. 많은 사람이 일상의 삶을 지탱해주는 인생이라는 신발을 신고 매일매일 익숙한 길과 새로운 길을 힘차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꽃이 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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