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학생 영어·일어식 표현 습관화 "바꿀 필요 못 느껴"
끝말잇기·가사 바꾸기 등 놀이 같은 재밌는 학습 원해

말과 글의 역할은 소통입니다. 우리는 소통이 잘 되고 있을까요? 12번으로 나눈 이번 기획은 10대 청소년과 함께 문제를 찾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는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입니다. 이 기획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의 지원으로, 한글학회 경남지회·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합니다.

'영어 몰입 교육', '한자 병기 교육'이 국가 교육 정책으로 제안될 만큼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영어와 한자 교육은 중요하다. 반면 2009개정 교육과정에는 있었던 '토박이말 익힘'은 2015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빠져 교사들이 따로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가르치고 배울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이런 교육 환경에 놓인 10대 청소년들에게 우리말을 사용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10대 청소년 10명 중 6명은 '와사비'(고추냉이), '넘사벽'(차이가 크다)을 "우리말로 바꿔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답했다.

▲ 밀양 밀주초등학교, 진주 선인국제중학교, 밀양 밀성중학교, 진주 무지개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7월 13·14·15일 자 <경남도민일보>를 읽고 '청소년 우리말 인식 설문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밀주초·선인국제중·밀성중·무지개초
▲ 밀양 밀주초등학교, 진주 선인국제중학교, 밀양 밀성중학교, 진주 무지개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7월 13·14·15일 자 <경남도민일보>를 읽고 '청소년 우리말 인식 설문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밀주초·선인국제중·밀성중·무지개초

◇"온라인에서 외국어 접해요" =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남도민일보>를 읽고 어려운 낱말을 찾아보는 설문 조사와 함께 '우리말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2020년 경남도교육청이 선정한 '토박이말 이끎 학교' 4곳의 545명 학생이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조사에 참여했다. 진주 무지개초등학교 235명, 선인국제중학교 60명, 밀양 밀주초등학교 44명, 밀성중학교 206명이 그들이다. 초등학교는 5·6학년 학생만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청소년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외국어를 얼마나 쓰나요?'를 물었다. '(매우) 자주 사용한다'는 대답이 42.9%(234명)로, '아예 사용 안 함'(0.7%·4명), '자주 사용 안 함'(8.6%·47명)이라고 답한 학생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보통'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47.8%(260명)였다.

청소년들이 외국어를 접하는 매체는 '온라인'이 399명(73%)으로 가장 많았다. 'TV' 124명(23%), 신문 4명, 라디오 3명, 기타(학원·친구 대화 등) 15명 순이다. 청소년들은 디지털 환경을 주된 공간으로 활용하며 언어문화를 재편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많이 사용하는 문체를 '급식체'(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체)라고 하는데,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마상'(마음의 상처)과 같은 줄임말이나 'ㅂㅂㅂㄱ'(반박불가)·'ㄹㅇㅍㅌ'(리얼팩트·사실임을 강조)·'ㄹㅇ'(레알·진짜와 비슷한 뜻)과 같은 초성체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온라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카페'(모임 쉼터), '에코백'(친환경 가방), '패닉'(극도의 사회 혼란 상태), '핸디캡'(불리한 조건). '곤색'(진남색), '뽀록'(들통나다), '오케바리'(좋다와 비슷한 뜻) 등 외국어와 속어를 일상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소년의 온라인 언어활동에서 드러나는 특성 중 하나는 영어의 일상적 사용이다. 영어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조기 교육이 보편화하면서 청소년 영어 능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외에도 일본어도 종종 쓰이는데,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자주 접하면서 일본어에 친숙해지는 경향이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성인 영상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하면서 일본어와 관련된 비속어나 유행어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국립국어원 2017년 '청소년 언어문화 실태 심층 조사 및 향상 방안 연구' 중)

◇"외국어 그냥 쓰면 안 되나요?" = 이번 설문 조사에서 외국어와 줄임말 보기를 주고 청소년들에게 '우리말로 바꿔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545명 학생 중 38%인 209명만이 '예'라고 답했고, 62%(336명)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우리말로 바꾸지 않아도 되는 까닭'에 대해서는 5가지를 적어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앞서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 336명 청소년 중 254명(76%)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대체되는 우리말이 더 어려워서'가 53명(16%), '다른 외국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가 16명(5%), '외국어가 더 멋있어 보여서'가 3명, '기타'(빠르게 전달 가능·다문화로 변화 등)가 10명이었다.

'우리말로 바꿔서 써야 하는 까닭'은 209명 청소년 중 146명(70%)이 '우리말을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이어 '(외국어는) 한 번에 이해가 안 돼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35명(17%), '대체되는 우리말이 더 쉬워서' 21명(10%), '우리말이 더 멋있어 보여서' 2명, '기타'(우리말이 사라질까 봐·외국인이 우리말을 더 많이 알고 있어 등) 5명 순이다.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는 "청소년들은 비속어·유행어·은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 수준은 높지 않다. 대다수 청소년은 자신의 평소 언어생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비속어를 사용할 때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명예교수는 "대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학교 교육을 통한 것이다. 문제는 그 교육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런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와 같은 식의 교육은 거의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로 하여금 왜 그런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교육이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설문 조사 결과, 청소년들도 문제 풀이식 방법이 아닌 일상에서 즐겁게 배울 방법이라면, 우리말을 쓰려는 의지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 조사 마지막에 '우리말을 즐겨 쓰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라고 묻고 자유롭게 적도록 했다. 123명 청소년이 '학교 내 즐거운 우리말 활동'을 제안했다. 청소년들이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법은 △우리말 끝말잇기 △보드게임 △모둠별 광고·우리말 사전 만들기 △골든 벨 △우리말로 노래 가사 바꾸기 등이다. 우리말 알리기(캠페인)·축제·행사·TV 프로그램·우리말 이어가기 인증(챌린지) 등 '우리말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답이 99명이었다.

재미를 추구하는 청소년들은 '우리말 게임'(35명)과 '우리말 유행어'(13명) 개발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우리말을 즐겨 쓰는 방법으로 △급식 시간 우리말 방송 △(외국어 사용 때) 벌칙 △휴지에 우리말 적어 알리기 등을 적었고, '불가능'하다고 적은 학생도 3명이었다.

감수/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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