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이춘숙 씨 2만㎞ 여정
영화감독 아들이 기록해
바람·추위 이긴 도전 뭉클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 '인생, 만만찮다.' 이 만만찮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우린 마음을 '단디'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힘들 때 다시 설 힘, 편견에 맞설 용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생긴다.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감독 정형민) 주인공 이춘숙(86) 씨는 '마음이 단단한 할매'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이 단단하지는 않았을 게다.

이 씨는 진주여고 출신으로 당시 흔치 않았던 대학에 다닌 신여성이었다. 그는 농촌지도소 공무원으로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나 서른일곱 살에 먼저 떠나보냈다.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홀로 딸과 아들을 키웠다. 살다 보니 그의 마음 근육이 커졌으리라.

영화감독은 이 씨의 아들이다. 정형민(51) 감독은 2017년 만 83살의 어머니와 떠난 카일라스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일라스산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뵌교(티베트의 토속신앙) 등 4대 종교의 성지다. 해발 6000m가 넘는다.

앞서 이 씨를 '마음이 단단한 할매'라고 표현한 것은 여든 살이 넘어서 순례를 떠나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고, 또 이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말한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망구다."

정 감독은 어머니와 함께 몽골 알타이산맥,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중국 타클라마칸사막, 티베트 카일라스산 등을 순례했다. 2만㎞의 여정이었다.

3개월간의 기록은 고되지만 유쾌했다. 눈물과 웃음이 공존했다.

▲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의 주인공 이춘숙 씨가 산에 올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스틸컷
▲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의 주인공 이춘숙 씨가 산에 올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스틸컷

모자는 매서운 바람과 추위,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마주하는 멀미, 높은 고도,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을 견뎠다.

분명히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 씨는 힘듦을 특유의 재치와 유머, 솔직함으로 극복했다. 그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현지인과 외국인 여행객과 잘 동화했다. 또 따뜻한 모성애를 발휘하며 그들에게 사탕이나 먹을 것을 건네며 자기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살뜰함도 보였다.

이 씨는 씩씩했다. 쉽사리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일라스산을 눈앞에 두고 이 씨는 돌산을 덮은 얼음 계곡을 납작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간다.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졌다. 하지만 기어코 그는 일어선다. 37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홀로 아들, 딸을 키웠고 카일라스산을 코앞에 두고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감독은 2014년 히말라야 순례, 2015년 불교 왕국 무스탕 순례, 2016년 미얀마 순례 등을 어머니와 떠나기도 했다. 영화에는 카일라스 순례를 떠나기 전 같은 해 봄에 다녀온 러시아 바이칼 호수와 히말라야 순례, 미얀마 순례의 모습도 담겼다.

영화에서 감독은 말한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노모를 모시고 험한 오지로 여행을 가느냐고. 나는 그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래오래 걷고 싶었고 티베트의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까지 지구의 아름다운 길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때론 무언가를 도전할 때 여러 핑계를 댄다.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하지만 핑계는 우리가 못할 이유를 만든 것이다. 이 씨를 보면서 무언가를 도전할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뭐부터 해야 할까 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씨는 영화 초반에 자신을 "대한민국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골짜기에서 왔습니더. 올해 팔십하고도 너이입니더. 그래도 청춘"이라고 소개한다. 그래, 청춘은 자신이 정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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