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계 정세, 능동적 대처 필수
그 나라 사고방식·역사 알고 존중해야

몇 년 전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연구 지원사업 성과발표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수십 개 팀이 왔는데 인도차이나 난민, 프랑스 국적법 등 외국 사례를 발표하는 것은 우리 팀뿐이었고, 다른 모든 팀은 한국의 노인, 가족 등 한국을 연구한 성과를 발표했다. 사회과학에서 외국 연구의 자리가 이렇게 좁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다가 다른 팀들은 데이터를 통해 정책에 응용 가능한 함의를 뽑아내는데 우리 팀은 의미와 역사를 논하고 있으니, 나라에서 우리 연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요즘 포털에서 국제뉴스를 읽다가 댓글을 보면 "이런 뉴스 올리지 마라"라는 내용이 많다. 특정 나라가 싫으니 특정 나라에 대한 뉴스를 내보내지 말라는 댓글도 많고, 아예 외국 소식 자체를 전하지 말라는 댓글도 많다. 한국 뉴스만 읽는 것도 피곤한데 왜 골치 아프게 외국에서 일어난 일까지 알아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외국 뉴스를 몰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외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를 가르쳐서 먹고사는 국제관계학과 교수로서 위기감이 엄습한다.

국제적 교류가 늘어나고 인터넷 세상이 팽창하면서 외국과의 연결 고리는 수없이 많아졌지만, 외국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외국에 나간다고 해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유학생들이 그 나라 문화와 지식을 습득해서 향후 고국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간 유학생 중 상당수가 학교에서 수업 듣고 남는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 나라 선거에 어떤 정치인이 나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요즘 문화적으로는 어떤 유행이 도는지 잘 모르는 유학생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과 영어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니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중장년층에 비해 청년들이 외국 동향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더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중장년층에게 열등의식으로 읽힐 수도 있는 겸허함이 있었다면, 청년들에게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고, 다른 나라는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외국에 우리 역사 알리기에 나서는 젊은이들도 있다. 필리핀의 SNS 스타가 욱일기 문신을 했다며 한국 몇몇 젊은이들이 그 계정에 몰려가 필리핀 사람들 전반에 대해 못 산다는 둥, 못생겼다는 둥 욕을 퍼부은 며칠 전 인종주의 댓글 사건은 어쩌면 예고된 것이었다.

외국여행은 못 가도 외국 소식은 알아야 한다.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시절처럼 외국 사례를 모방하여 선진국처럼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현실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다. 무역이나 투자를 할 때도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외국인들 마음을 얻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 나라 사람들 사고방식을 파악해야 하고, 그들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고, 역사에 그들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한국과의 관계를 논하든지 한국에 대해 알리든지 하는 것이 순서이다.

일단, 수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1945년 초 한 달 동안 일본군이 자행한 마닐라 대학살로 10만 명이 사망했고, 끔찍한 고문과 성폭력으로 수많은 여성과 남성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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