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항쟁 다룬 단편 뭉클
오성원 등 실존인물 그려

지난달 1980년대 지역 학생운동을 다룬 만화책 <비밀 독서 동아리>를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지역 현대사인 3·15의거와 부마항쟁을 다룬 단편소설을 소개한다.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 소설집 <5월 18일, 잠수함 토끼 드림>(우리학교, 2020년) 안에 있는 '슈사인 보이'와 '손수건'이란 작품이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다 = 소설 '슈사인 보이'는 3·15의거 당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실존인물 구두닦이 오성원을 소재로 한 일종의 공상과학 소설(SF)이다. 슈사인 보이(Shoeshine Boy)는 구두닦이 소년을 말한다. 소설 배경은 1960년 자유당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3·15의거 시기. 구두닦이 광식은 '슈사인 보이'란 이름으로 신문이 보도하지 않은 진실한 내용을 담아 유인물을 만든다. 이 유인물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때 22세기 미래에서 소다가 그를 찾아온다. 소다의 집안은 3·15의거 당시 광식을 죽이고 거대한 부를 이룬 것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22세기가 되면서 돈보다는 도덕성이 더 중요해진 사회가 되자, 소다의 집안은 막내 아들 소다를 보내 광식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려고 한다. 과거로 온 소다는 별 볼 것 없는 구두닦이가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도 가난하면서 더 가난한 이웃을 돕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이든 힘을 보태려는 사람이 바로 광식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난한데 어떻게 남을 도와요? 자기부터 살고 봐야지.' 소다에게 광식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의 행동은 의문투성이였다." (19쪽)

소다는 광식에게 그가 죽게 된다는 사실과 결국 3·15의거 이후에도 쉽게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사실을 알려주며 설득하지만, 광식은 끝내 죽음이 예정된 길로 떠난다.

"난 이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 구두 광이 구두약 한 번 칠한다고 나는 줄 아냐? 몇 번이고 약을 칠하고 죽을힘을 다해 문대야 눈이 번쩍 뜨이는 광을 낼 수 있다고. 난 그 번쩍이는 광을 위해 약을 칠하고 죽기 살기로 문대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몇 번째 구두약인진 모르지만, 이게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번쩍하고 광이 날 거 아니냐." (38쪽)

▲ 〈 5월 18일, 잠수함 토끼 드림 〉표지.
▲ 〈 5월 18일, 잠수함 토끼 드림 〉표지.

◇그날, 소년의 트라우마 = '손수건'은 부산에서 마산으로 가출해 배달원으로 일하다 1979년 유신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부마민중항쟁 당시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린 한 남성이 주인공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서울에서 아내, 딸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장으로 설정됐는데, 소설은 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가출을 하는데, 휴대전화 메시지로 날아오는 카드 사용 기록을 보니 난데없이 경남 마산이다. 그러다 경남대에서 열리는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 TV 중계 화면 속에서 인터뷰를 하는 아빠를 발견한다. 실제 지난해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대통령이 참석한 첫 기념일 행사가 마산지역 항쟁 발원지 경남대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아빠는 자장면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창동 사거리를 지나다 시위대를 처음 보았다며 더듬거렸다. (중략) 아빠는 그런 시위 장면은 처음 보았다고, 신기해서 따라다니다가 골목길에서 붙잡혔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묶어 가지고, 하며 질질 끌려가는 시늉을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리포터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 끄덕이며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느냐고 했다." (55쪽)

소설을 쓴 하명희 소설가가 작가의 말에서 암시를 했는데, 소설 속 아빠는 실제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김효영 씨다. 항쟁 당시 가출한 15살 소년이던 그는 호기심에 시위대를 따라다니다 경찰에게 붙잡혔고,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김 씨는 언론에서 이때 후유증으로 평생 대인기피증과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는 그럼 지금까지, 리포터가 말한 것처럼 열다섯 살 이후 40년 동안 그때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건가. 그래서 그렇게 답답하고 고지식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 가족 여행도 못 가고, 낯선 곳에도 못 가고, 그걸 감추려 화를 냈던 걸까. 10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누가 잡으러 온다는 무서움을 참았던 걸까." (62쪽)

그런데 3·15의거와 부마항쟁을 다룬 소설이 왜 5·18 기념 소설집에 있는 것일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연결되어 우리가 사는 현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체 작품 6편 중 3·15의거를 다룬 소설을 첫 번째로, 부마항쟁 소설을 두 번째로 배치한 것도 5·18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이런 민주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인휘 소설가의 발문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5월 18일, 잠수함 토끼 드림>에 실린 소설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어둠을 청산하며 이루어진 것이라고. 우리의 밝은 미래는 그런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잘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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