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인간에게도 믿음 놓지 않았건만
법 만들어 악용하는 우리 사회 기득권

법은 항상 뒤따라온다. 범죄가 있고 그에 따른 법이 만들어진다. 범죄를 미리 예측해서 법을 만들 수는 없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떠오른다. 수십 년 후 미래의 어느 날, 워싱턴에서는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죄를 예측해서 범죄자를 잡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보호한다.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미리 예측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특수경찰이 예비범죄자들을 체포하는 내용이다.

요즘 주변에서 기분 나쁜 경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몇 번의 동일한 인터넷 접속이나 SNS 연결로 파악된 개인 알고리즘이 각종 사이트와 마케팅 업체에서 작동된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인터넷 정보를 보는 것이겠거니 착각하고 산다. 데이터가 개인 온라인상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검색하지 않으면 몇몇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울타리 안에서만 내 온라인 인생을 마감할 것 같다. 인터넷 상 자유 의지는 확실히 사라지고 있다. 명치끝이 쭈뼛한다. 빅데이터에 그런 통계들이 들어갈 것이다. 인간은 이제 현실에서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데이터의 의지대로 살게 됐다.

만일 영화처럼 인간들의 범죄를 예지자가 아닌 기계 예측을 통해 단죄한다면, 그 밑바탕에는 필히 빅데이터가 자리할 것이다. 미래의 법은 빅데이터에 의한, 기계의 논리와 완벽하게 통계에 의한 예측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때도 여전히 법을 다루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돌아가 보자. 범죄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리더의 성과를 위해 조작된다. 다수 의견 외에 소수 의견을 무시한 결과, 죄짓지 않을 사람조차 단죄하는 결과가 발견된다. 인간처럼 부조리한 존재가 있나 싶다. 범죄를 없애기 위해 법을 만들어 놓고, 법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다니….

물론, 부조리하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기계와 데이터는 실수하지 않지만 인간은 실수를 한다. 동시에 오류에 대해 수정을 시도하는 존재이다. 법을 통한 잔꾀를 부릴 수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탈출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런 상상이 가능하다.

동양 고전 속 인간을 악한 천성으로 규정하는 한비자는 그래도 인간을 믿었던 것 같다. 악한 속성을 가진 인간들이지만, 경계하고 단죄해서 수양시키도록 리더에게 끝없이 훈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 자신도 수양하도록 독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애정조차 엿보인다.

최첨단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은 그만큼 사라지는 디스토피아가 코앞이다. 법 세상도 마찬가지다. 이미 수많은 법이 있고, 새로운 법이 더 생겨날 것이다. 법을 아는 자들만이 악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들도 가득하다. 다수를 위한, 혹은 소수의 권리를 위한 법들은 유령처럼 국회를 떠돌거나 사장되고 있다.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최첨단 기술에 의해 조작되어 사라져 가고, 그런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법 아래 인간이 단죄될 세상! 법을 악용하는 기득권은 그런 법을 앞세워 자신들이 인간이었던 작은 증거, '악어의 눈물'조차 거둘 것이다. 차라리 한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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