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물리친 장군을 음해한 로마 정치판
목숨 걸고 지킨 나라 저주하게 만들다니

고대 로마 공화국의 유명한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죽기 직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배은망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나의 뼈를 얻지 못할 것이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알프스를 넘은 희대의 전략가 한니발(카르타고의 명장)에 의해 기습을 당한 로마는 칸나이 전투 등에서 연전연패를 당했고 많은 병사(로마시민)들이 희생되었다. 한니발은 로마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반도를 제집 앞마당처럼 휩쓸었고 로마군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국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이 시기 스키피오는 겨우 25살의 나이에 자청해서 위험한 이베리아 반도 원정길에 올라 한니발의 보급기지였던 그곳을 정복하고 알리파 전투에서 카르타고 군을 전멸시킨다.

그리고 29세라는 파격적인 나이로 로마 최고 공직인 집정관의 자리에 올라 북아프리카 원정을 떠난다. 한니발을 이탈리아 반도에서 끌어내기 위해 카르타고의 수도를 직접 쳐들어간 것이다.

한니발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의 보급대를 1차적으로 끊어버리고, 이후 본토인 카르타고로 쳐들어가 본토 방위 때문에 한니발을 철수하게끔 하는 엄청난 전략이었고 결국 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카르타고로 돌아온 한니발은 이제 처지가 뒤바뀌어 카르타고 방위를 해야 했고, 결국 기원전 202년 자마전투에서 33세의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에 대패를 당한다. 이로써 로마를 멸망직전까지 몰고 갔던 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난다.

스키피오는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으로서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대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내부의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게 인지상정이고, 스키피오는 나라를 구한 자신을 음해하고 공격하는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고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낙향하고 만다.

스키피오는 천재 전략가이면서도 훌륭한 인품을 갖추었던 인물이었다. 신사적이고 인간적인 성미로 인해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놔라 식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남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냉혹한 정치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스키피오는 젊은 날에 엄청난 공을 세웠고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스키피오 존재 자체가 공화국 로마에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상황이 어떠한들 스키피오는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고 그래서 목숨 바쳐 지켰던 조국 로마에 그런 말을 했을까.

스키피오는 갓 약관을 넘겼을 때 이베리아 반도로 먼저 갔던 아버지와 삼촌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죽은 아버지와 삼촌의 뒤를 이어 그 위험한 곳으로 출정한다. 그곳 원주민들에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음에도 그들을 전혀 해하지 않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품어주었다.

스키피오의 위대한 점은 그 군사적 천재성보다도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성품이었다. 하지만 로마는 정치적인 논리로 스키피오를 버렸고 스키피오는 그런 로마를 저주하고 죽었다.

정치인들은 정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공학이라고 하면서도 또 매몰차게 그들의 정서를 짓밟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최소한 조국을 저주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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