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함안 중심지
국밥촌·민속박물관 인상적

현재 함안군에서 제일 번화한 곳은 함안군청이 있는 가야읍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함안의 중심지는 함안면이었다. 지금 함성중학교가 옛 군청이 있던 자리다. 함안면은 고려시대부터 함안지역 관아가 있던 읍치 노릇을 해 온 곳이다. 주변에 읍성 흔적도 남아 있다.

읍에서 면으로 규모가 줄긴 했지만, 함주(함안의 옛 이름), 읍성, 읍내 같은 함안면의 오랜 역사는 지금도 함성중학교, 함읍우체국, 천주교 마산교구 함읍공소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함안면 거리를 걸으면 아주 오랜 추억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에는 이 추억 같은 거리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이 속속 새로운 공간들을 열고 있다.

▲ 무진정에서 바라본 돌다리. /이서후 기자
▲ 무진정에서 바라본 돌다리. /이서후 기자

함안면 산책을 함안면 괴항마을에 있는 무진정(無盡亭)에서 시작한다. 소박한 정자와 부평초(개구리밥) 가득한 연못, 그 위를 가로지른 퇴색한 돌다리가 꽤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무진정은 조선 전기 문신인 조삼이 1542년에 지은 정자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 조려의 손자로 무진은 그의 호다. 당시 풍기군수로 있던 유명한 학자 주세붕이 적은 기문을 보면 무진정의 풍치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은 다섯 고을의 원님을 역임하다가 일찍이 귀거래사를 읊으시고는 이 정자의 높은 곳에 누워 푸른 산, 흰 구름으로 풍류의 병풍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로 안내자를 삼아 증점(공자의 제자)의 영이귀 같은 풍류를 누리고 도연명의 글과 같은 시흥을 펴시면서 고요한 가운데 그윽하고, 쓸쓸한 가운데 편안하고, 유유한 가운데 스스로 즐기시면서 화락하게 지내셨다."

매년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함안 낙화놀이'가 열린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불꽃놀이다.

무진정에서 함안면 방향으로 넓은 논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함안역이 보인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 복선전철화로 2012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역사는 아라가야 특유의 불꽃무늬 토기를 형상화했다. 함안역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함안면 중심이다.

▲ 함안면 한우국밥촌. /이서후 기자
▲ 함안면 한우국밥촌. /이서후 기자

함안면사무소 뒤편 널찍한 공터에 자리 잡은 한우국밥촌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국밥촌이지만 국밥집은 단 세 곳. 하지만, 공휴일이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국밥촌은 오래전 번화했던 함안 오일장의 유산이다. 가장 오래된 식당의 역사가 50년이 넘는다. 국밥촌에서 파는 쇠고기국밥은 쇠고기, 선지, 콩나물, 무가 들어가는데 함안 국밥만의 독특함이 있다.

국밥촌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함안면사무소와 천주교마산교구 함안성당 함읍공소가 있는 큰길이다. 공소(公所)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을 말하는데, 별다른 장식이 없는 조립식 단층 건물, 입구 위로 단정하게 세워진 십자가가 함안면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 함안면 골목 풍경. /이서후 기자
▲ 함안면 골목 풍경. /이서후 기자
▲ 문학평론가 조연현 선생 생가. /이서후 기자
▲ 문학평론가 조연현 선생 생가. /이서후 기자

주변 주택가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오래된 것과 새것의 조화가 묘하다. 예컨대 나무기둥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멘트 담벼락이나 말끔한 붉은 벽돌 양옥집에 기대 서 있는 낡은 나무 헛간. 화려한 색감의 주유소 담벼락을 마주 보는 낡은 흙담 같은 것이다. 이런 풍경 가운데 현대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문학평론가 석재 조연현(1920~1981) 생가가 남아 있다.

큰길 양옆으로도 오래되고 낮은 가게들이 낡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큰길로 가다 보면 함안초등학교 입구 옆에 함안민속박물관이 보인다. 함안초에서 교육용으로 지은 것인데, 숯을 넣어서 다리는 다리미,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손 농사 도구 등 요즘 젊은이들이 보면 신기한 생활도구가 많다.

바로 옆 함성중학교는 옛 군청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는 함안현 관아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학교 주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학교 입구에는 역대 함안 고을 수령의 선정비들과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주리사지 사자석탑이 있다.

▲ 함성중학교 입구 주리사지 사자석탑. /이서후 기자
▲ 함성중학교 입구 주리사지 사자석탑. /이서후 기자
▲ 옛 군청이 있던 함성중학교. /이서후 기자
▲ 옛 군청이 있던 함성중학교. /이서후 기자

 

함안면에서 만난 사람들

◇함안면 카페 해담 이정민 대표 = 함안면 함안초등학교 앞에 10년이 넘은 폐가가 한 채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골치 아픈 우범지역으로 군에 철거 민원도 넣었던 곳이다. 이곳이 말끔하게 새로 태어나 예쁜 카페가 되었는데, 그게 지금 카페 해담이다.

카페가 들어선 지 이제 1년. 조금 외진 것 같지만 주말이면 많은 젊은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해담은 모녀가 공동대표로 있다. 가족들이 직접 운영하는데, 실제 건물주는 딸 이정민(38) 대표다.

"아버지 고향이 근처 가야읍 도항리예요. 오빠랑 저랑 시골 촌집을 꾸며 공간을 만들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아버지 고향과 가까운 함안면에 적당한 빈집을 구한 거죠."

한우국밥촌 말고는 유명한 곳이 없던 함안면 거리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니 주민들이 아주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함안면의 매력은 역시 오래되고 낡아서 정겨운 풍경이다.

"처음에는 카페만 보고 오셨다가, 커피 마시고 동네를 거닐고 가시는 분이 많아요. 이곳에는 골목마다 오랜 시골 정서가 남아 있거든요. 골목 촌집 대문 하나만 봐도 너무 정겹다고들 말씀하시죠. 함안면은 동네 한 바퀴만 거닐어도 치유(힐링)가 되는 곳이에요."

◇무진정 옆 카페 식목일 함종혁 대표 = '어? 여기에 카페가 있네?'

함안면 괴항마을에 있는 무진정을 거닐다가 문득 발견한 카페 식목일.

언뜻 시골 가게 같은 외관인데, 내부를 아주 잘 꾸며놨다. 그리 크지 않지만 세 개로 나뉜 공간마다 무진정 방향으로 큰 창을 딱 하나만 내어서 풍경을 액자로 만들어 버렸다. 멀찍이 보면 그 창 아래 앉은 손님들까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카페 식목일은 지난 6월에 문을 열었다. 함종혁(29) 대표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운영한다.

함 대표는 고향이 경북 포항이다. 함안하고는 인연이 없는데, 어떻게 이곳에 카페를 냈을까.

"무진정 때문이에요. 마산에 사는 여자 친구랑 자주 무진정으로 놀러 왔거든요. 주변 논이랑 마을 풍경도 마음에 들어서 계속 찾아오다가 결국 무진정 바로 옆에 가게도 차렸어요."

연고도 없이 가게를 차릴 정도로 그가 푹 빠진 무진정과 함안면의 매력은 뭘까.

"카페를 여름에 시작해서 그런지 어떨 때 보면 여름 방학 때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느낌이 들어요. 카페가 한산할 때 주변 산책을 자주 하는데 함안천 둑길도 좋고, 귀항마을 골목도 아기자기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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