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스승 모습 담은 조각
문화재청 "사실적으로 재현"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이 국보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일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고려 시대 고승 희랑대사를 조각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희랑대사 좌상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활동한 희랑대사의 실제 모습을 조각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이 많이 제작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없으며, 희랑대사 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희랑대사 좌상은 원래 목조상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결과 뒷면은 목조지만 정면은 건칠(乾漆)로 제작됐음을 확인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따르면 얼굴과 가슴·손·무릎 등 앞면은 건칠로 만들어졌으며,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제작됐다.

▲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예고된 '건칠희랑대사좌상'. /합천군
▲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예고된 '건칠희랑대사좌상'. /합천군

건칠은 삼베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든 기법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유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존하는 예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기법은 힘줄이나 뼈마디까지 아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건칠기법으로 만들어진 희랑대사 좌상은 후대에도 변형 없이 제작 당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희랑대사 좌상의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胸穴國人·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胸穴)은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고자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유사한 모습을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보물 제1000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국보지정 예고 이유를 "우리나라에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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