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야 충돌했던 낙동강변 요충지
일본인 살았던 서부마을-신도시 대조

양산시 물금읍 하면 퍼뜩 떠오르는 장면은 아파트로 가득한 신도시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오래된 주택가도 있고, 넓은 들판을 낀 시골마을도 있다. 이런 풍경들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곳이 물금이다.

물금 지역은 신라와 가야가 충돌했던 낙동강변 요충지였다. 삼국사기에는 황산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물금은 한자로 '勿禁'인데, 무언가 강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유래와 관련해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가야와 신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때 물금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고 자유롭게 왕래하자고 했다는 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 일대가 낙동강 습지로 물난리가 많이 났기에 수해가 없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물을 금한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이다.

▲ 증산 아래 자리잡은 증산마을.  /이서후 기자
▲ 증산 아래 자리잡은 증산마을. /이서후 기자
▲ 서부마을 서리단길에 있는 민경 공방.  /이서후 기자
▲ 서부마을 서리단길에 있는 민경 공방. /이서후 기자

물금은 양산에서도 일찍 근대화가 시작된 곳이다. 물금역 덕분이다. 1905년 일제가 경부선을 개통할 때 함께 시작된 역이다. 긴 역사를 이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KTX 정차역은 아니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만 다닌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부산역에서 출발해 서울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제일 많다. 이 외에 목포, 보성, 순천 등 전라도 쪽으로 가는 기차도 있다. 물금역에서 이어지는 서부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였다. 철도를 따라 들어온 이들이다.

"1905년 경부철도 개통 때 물금역은 지금보다 위쪽인 서부마을 언저리에 있었었다. 1939년에 배후 터가 넓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물금역을 이전한 1939년은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며 본격적으로 물자를 공출하고 인력을 징발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 서부마을 서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서리단.  /이서후 기자
▲ 서부마을 서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서리단. /이서후 기자
▲ 황산공원에서 물금역 가는 육교.  /이서후 기자
▲ 황산공원에서 물금역 가는 육교. /이서후 기자

물금읍에서 문화공간 시루문화방아터를 운영하는 이헌수 대표의 이야기다. 서부마을은 오랫동안 낡은 주택가 동네로 남아 있었는데, 그 나름으로 운치가 있어 요즘에는 새로 예쁜 공간들이 제법 들어서고 있다. 특히 탑마트와 물금농협 사이 골목 주변에 공간들이 많은데 이곳을 '서리단길'로 부른다. 서부마을과 서울 경리단길을 합친 말로 그만큼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서부마을에서 양산 도심 쪽으로 가다 보면 몇 분만에 갑자기 풍경이 신도시로 바뀐다. 신도시 덕에 물금읍은 현재 인구가 약 12만 명으로 지금도 인구가 늘고 있다. 2017년 3월 처음으로 인구 9만을 돌파할 때는 인구 자체만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 물금 신도시 풍경.  /이서후 기자
▲ 물금 신도시 풍경. /이서후 기자
▲ 신도시와 대조를 이루는 서부마을.  /이서후 기자
▲ 신도시와 대조를 이루는 서부마을. /이서후 기자

아파트촌 사이 빌라촌에는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거대한 도심의 숨통 노릇을 한다. 요즘에는 안녕 고래야 같은 동네책방도 생겼다.

도심 거리를 거닐다 다시 낙동강변 증산(133m)을 향해 가면 다시 몇 분만에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양산천이 낙동강을 만나는 자리에 펼쳐진 물금들판이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테다. 증산마을에서 증산 자락에 올라 보는 풍경은 영락없는 시골 풍경이다. 물론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아파트 숲이 보이다. 마을을 지나 강변에 있는 황산공원을 마지막으로 둘러본다. 야구장, 배구장, 농구장, 족구장은 물론 캠프장과 선착장까지 갖춘 엄청나게 넓은 공원이다. 이곳만 거닐어도 한나절이 걸릴 것 같다. 황산공원을 따라 난 철로 위로 가끔 무뚝뚝하게 기차가 지난다.

 

물금읍에서 만난 사람들

◇이헌수 시루문화방아터 대표 = 이헌수(49) 시루문화방아터 대표는 양산여고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다. 교직에 첫발을 들인 1999년부터 지금까지 21년을 양산에서 살았다. 창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지난해부턴 양산시 물금읍 증산마을 주민들과 시루문화방아터라는 지역 문화 복합공간을 운영 중이다. 옛 방앗간이 있던 터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시루문화방아터는 마을 사랑방 노릇을 한다. 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수 있고, 함께 문학 답사도 한다. 물금 신도시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증산마을의 매력은 뭘까.

"도심과 달리 이곳은 수평적으로 생활이 움직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심 아파트에서는 윗집에서 통닭 냄새가 나면 아랫집에서는 '윗집에서 통닭을 시켜 먹었구나'하고 기억을 하게 되잖아요. 이렇게 더심에서는 위아래 층으로 배달된 음식의 냄새를 통해 우리의 식습관이 교류되지만, 여기서는 어른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먹으라고 슬쩍 주고 가는 식이에요. 수평적으로 눈앞에서 교류가 이뤄져요.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이런 게 좋아요." 

◇조여경 안녕 고래야 대표 = 물금읍 신도시 도심에 있는 동네책방 안녕 고래야 조여경(37) 대표는 친구와 함께 2018년 그림책 전문 동네책방을 열었다. 책방 이름은 상호는 줄리 폴리아노의 그림책 <고래가 보고싶거든>에서 영감을 받았다. 책뿐만 아니라 간단히 앉아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부산에서 살다가 양산으로 이사 온 조 대표가 이곳에 책방을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어떤 일을 해볼까 고민을 했어요. 그러던 중 양산에도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맘 편히 갈 수 있을 만한 공간,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안녕 고래야는 매장 책 판매는 물론 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도서 구독서비스, 강연, 모임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주로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찾는다. 조 대표가 그림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림책 작가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종종 찾는다. 조 대표가 보는 물금 신도시의 매력은 뭘가.

"아이 키우기 편한 동네에요. 평지다 보니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편하고 부산대병원, 황산공원, 디자인공원 등이 있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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