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빨갱이 타령 탓에 개혁 지리멸렬
계산·걱정은 버리고 국민이 준 힘 써라

나라 살림을 맡긴 자들이 엇길로 나갈 때마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바로 세운 것은 한 사람의 걸출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 권력에 핍박받고 대자본에 착취당하던 백성 민중이었다.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장기 독재를 하던 부패한 자유당과 이승만은 4·19 시민혁명으로 무릎 꿇었다. 맡기지도 않았는데 무력으로 강도질한 박정희는 부마항쟁 불길로 유신 독재 심장이 호위무사의 총탄에 뚫렸다. 광주를 도륙하여 피로 공포정치를 펼치던 5공 신군부는 6·10 민주항쟁에 늑대의 발톱과 독사의 이빨을 감추고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바로 세운 나라를 새로 맡긴 이들은 하나같이 민중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삿된 무리에 휘둘리어 오히려 그들의 주구로 전락했다. 4·19로 정권을 맡은 민주당은 제 밥그릇 챙기기 신·구파 분열에 집안싸움만 하다 박정희의 군홧발에 나가 떨어졌다. 80년 서울의 봄은 꽃을 채 피우지도 못한 채 꺾였다. 87년 민중의 함성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내 주었건만 뜻을 저버린 이들의 잇속 계산에 발톱과 이빨을 감춘 노태우에게 밥상을 빼앗겼다.

이렇듯 적폐를 청산하고 민중의 염원을 받들어 새로운 나라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독재와 좌우 이념갈등도 그중 크게 자리 잡은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부터 오늘까지 독재에 시달리고 좌우 이념갈등에 휘둘려 왔다. 적폐 청산을 하자는데 그 대상들이 독재라고 핏발을 세우면 지레 움찔한다. 개혁 정책을 발표하고 밀고 나가려는데 빨갱이 나라를 만들 거냐며 광화문에서 깃발 흔들면 용두사미 정책으로 만들고 만다. 혹 정권을 뺏겨서 이나마 추진 못할까 표 계산하느라 엉거주춤하다 저들에게 기대를 건 이들조차 눈길을 거두게 했다.

자치통감이란 중국 역사서를 쓴 송나라 사마광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노는데 한 아이가 커다란 물독에 빠졌다. 어른들이 몰려와 사다리를 가져와라 아니다 밧줄로 끌어 올려라 두레박으로 물을 퍼라 떠드는 동안 아이는 꼬르륵 다 죽어가는 판이었다.

그때 사마광이 큰 돌을 들어 물독을 깨어 친구를 구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덜 소중한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만히 있어라 해놓고 청와대에서 현장까지 제 한 몸에 끼칠 책임이나 피할 궁리하느라 손 놓고 있는 사이 수백의 생때같은 목숨을 저버린데 분노한 촛불이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리고 현 정부에 나라를 바로 세우라 명령했다.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적폐청산과 서민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어 기대가 무척 컸다. 그러나 지지도가 오르자 반대 세력들이 독재와 이념갈등으로 발목을 잡았다. 현 정권은 또 여러 가지 계산으로 강력히 밀어붙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모양새다. 우리 남북문제에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보고 적폐청산에 표 계산을 하며 기업의 읍소에 최저임금이 말뚝을 박았다. 역병이 창궐하는데 종교의 자유를 찾는다.

권력은 쓰라고 준 것이다. 지지한 크기에서 사용하는 권력은 독재가 아니다. 이미 40여 년 전 덩샤오핑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케케묵은 빨갱이 타령 이제 털어버려도 된다.

주위에서 가끔 독재자들을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독재를 했지만 거침없이 밀어붙였다는 게 그 이유다. 두 마리 토끼를 쫓을 땐 작은 놈을 버리고 큰 놈을 잡아야 한다. 나라를 위한다면 계산과 걱정은 버리고 주어진 만큼 그 힘을 휘둘러라. 힘을 쓰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져 이길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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