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망산에서 적 침략 경계
해안도로 생기고 절경으로 유명
크고 작은 섬 절묘한 배치 눈길
모난돌 많은 다대항 갯벌도 독특

역시나 해금강으로 향하는 도로는 정체가 심합니다. 명승 2호인 해금강은 거제를 대표하는 풍경 명소입니다. 명승(名勝)이란 게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인데, 주로 예술적으로, 관상적으로 아름다운 곳을 말합니다. 해금강도 국가가 인정한 멋진 풍경이란 말입니다. 원래 이름은 갈곶(葛串)입니다. 지금도 행정구역은 남부면 갈곶리죠. 하지만, 사람들이 강원도 해금강처럼 경치가 좋다고 해서 이곳도 아예 해금강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요즘 관광객들이 해금강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바람의 언덕 때문일 겁니다. 언덕 위에 풍차도 있어 볼거리가 됩니다. 옛날 바람의 언덕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실제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던 곳이었습니다. 언덕에 무성하게 자란 풀이 가만히 서 있을 여유가 없을 정도였죠.

오늘 여행에서 사람 많은 해금강은 한적함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그냥 지나갑니다. 굳이 해금강 안에서 한적한 여행을 즐기고 싶으면 신선대가 있는 함목몽돌해변이나 해금강 끝자락 석계해변에서 산책을 해보길 권합니다. 작긴 해도 각자 묘한 느낌이 있는 풍경들입니다.

▲ 해안도로 변 주황색 지붕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포마을 풍경.  /이서후 기자
▲ 해안도로 변 주황색 지붕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포마을 풍경. /이서후 기자

◇남부면 해안도로를 따라

해금강 길목인 함목삼거리를 지나니 겨우 속도가 나네요. 바다를 끼고 달리는 내리막 도로입니다. 다 내려오니 다대항입니다. 다대항에 있는 유명한 핫도그 가게에서 우선 배를 채웁니다. 다대항은 갯벌이 아주 넓습니다. 아니, 지금 상상하신 것보다 더 넓습니다. 갯벌은 바다 건너편 다포마을까지 이어져 있거든요. 풍경으로 치면 육지 속에 있는 거대한 호수 같기도 합니다. 얼핏 보기엔 도대체 어디를 통해서 큰 바다와 이어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해안도로(1018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다포마을입니다. 이곳 갯벌에는 돌이 많습니다. 몽돌은 아니고 모난 돌들인데, 이 돌들 덕분에 뭔가 독특한 바다 풍경이 완성됩니다. 아까와는 반대로 다포마을 해변에서 다대항을 바라보니 오히려 풍경이 더 멋집니다. 다포마을에도 구석구석 예쁜 풍경이 많네요. 특히 도로변 나지막한 집들이 강렬한 주황색 지붕을 이고 나란히 선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도로의 곡선과 잘 어우러지는 풍경입니다. 바다로 스며드는 마을 하천에서 참게 무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다포마을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입니다. 이 구간 오르막 도로는 도로 곡선과 바다 풍경이 잘 어우러져 운전하는 즐거움이 크네요. 이렇게 달려서 고개를 넘으면 여차몽돌해변입니다. 올해 해양수산부 전국 한적한 해수욕장 25선에 선정된 곳입니다.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1996년), 김수현·전지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2014년)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거제에 몽돌해수욕장이 많은데, 이곳은 숨겨져 있다가 지금 우리가 지나온 도로를 만들고 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는군요. '여차'란 바다 앞에 떠 있는 여덟 개의 섬이 바라보고 지킨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여차몽돌해변을 지나 우리가 앞으로 갈 곳도 이 섬들을 품은 풍경이자 그리고 이번 여행의 핵심일 겁니다. 여차몽돌해변에서 홍포, 대포, 근포를 지나 명사해수욕장까지 남부면 최남단 해안을 따라 이어진 3.5㎞ 도로. 특히 여차에서 홍포까지 구간은 거제 최고 바다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구간에 전망대가 몇 곳 있는데, 절벽 위라는 위치 자체가 이미 멋진 풍경을 예비하고 있는 데다,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한려수도 풍경을 압축한 듯하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멋집니다. 이곳은 일출도 일몰도 모두 장관입니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찾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오가는 이들이 없습니다. 이곳 도로가 그렇게 좋진 않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산속 길을 달린다고 보면 되는데, 처음에는 아스팔트에서 시작해 중간에 시멘트 길로 변하고요, 나중에는 흙길이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가다 보면 '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나' 하고 불안해지죠. 그리고 길이 좁아서 중간에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난감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가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길을 지금처럼 불편한 상태로 둬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야, 한적한 맛이 더해지거든요.

▲ 나무 덱으로 만들어진 전망대 '흐르는 풍경'과 주변 섬 풍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드로잉웍스
▲ 나무 덱으로 만들어진 전망대 '흐르는 풍경'과 주변 섬 풍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드로잉웍스(사진 이한울 작가)
▲ 여차홍포전망대에서 본 섬들. /이서후 기자
▲ 여차홍포전망대에서 본 섬들. /이서후 기자

◇흐르는 풍경을 담은 전망대

자, 이렇게 흙길과 시멘트 길을 번갈아 달리다 보면 어느 첫 번째 언덕에서 짠, 하고 전망대가 하나 나타납니다. 어, 이거 뭐지 싶을 정도로 멋진 모양입니다. '흐르는 풍경(Flowing landscape)'이란 이름이 붙어 있네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에 선정되면서 원래 있던 전망대를 없애고 2019년에 다시 태어난 곳입니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독특한 전망대 자체가 풍경을 완성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건축회사 드로잉웍스가 설계한 건데요. 건축사 누리집에 있는 설계 개요를 그대로 가져와 봅니다.

"절벽에 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산이 굽이치고 바다가 교차하는 풍경이 보인다. 산과 바다가 대치하듯 만나는 풍경이 이어질 때쯤 바다 고래처럼 거대한 섬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곳에 압도적 스케일의 섬과 무한한 깊이에 빠질 듯한 바다가 한자리에 있다. 드넓은 수평선을 보며 지나온 방향의 아래에는 에메랄드빛의 몽돌해수욕장과 여기저기 돌무덤과 같은 섬이 펼쳐진다."

오래전부터 이곳 풍경은 숨겨진 거제 비경으로 통했습니다. 실제 여차홍포해안도로는 거제 최남단 망산 자락을 남쪽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기도 합니다. 망산이란 이름 자체가 고려 말 왜구 침입을 감시하던 것에서 나온 거거든요. 잘 감시하려면 잘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 장소가 바로 흐르는 풍경이 아닌가 합니다. 자, 이런 풍경을 어떤 식으로 전망대 설계에 담아냈는지 더 읽어보겠습니다.

"이 땅에 흐르는 듯 펼쳐지는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땅의 형상은 도로 한편 삼각형의 선형으로 영역을 가지며 한쪽이 경사진 곳이다. 우측에 섬을 보는 풍경과 좌측에 여차마을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따라서 계획은 자연스레 지형을 따라 흐르는 듯 길게 늘어뜨린 데크를 놓고 우측은 지형을 따라 아래로 내려 스탠드형식을 갖추어 섬을 조망하도록 하고, 좌측은 들어 올려 바다 쪽으로 길게 내민 데크가 바다로 한걸음 다가가서 여차마을을 내려다보도록 했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해 데크 레벨을 다양하게 취하며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 가지도록 했다."

쉽게 말해 해안도로에서 수직으로 정면으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방향과, 해안도로와 수평으로 전망대 지나 내리막길을 품고 그 너머 섬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구성됩니다. 전망대로 가려고 특별하게 길을 건너야 한다거나 계단을 많이 올라야 하는 게 아니라서 그냥 지나가다가도 '어, 여기 차 세워봐'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듯한 건축입니다.

흐르는 풍경을 지나면 두 번째 언덕에서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납니다. 여차홍포전망대입니다. 이곳은 누가 봐도 전망대구나 싶은 건물입니다. 이곳 바다 풍경의 핵심은 가까이 있는 섬들이 만드는 풍경입니다. 거제분들은 이곳을 '손대도'라고 부르는데, 섬과 섬 사이가 좁다는 뜻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좁다는 '솔다'라고 하거든요. 대병대도와 소병대도 주변으로 50여 개 섬과 여(바위)가 몰려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 섬의 배치가 절묘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곳 전망대는 사진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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