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행적 불분명' 이유 탈락
추가 자료 발굴도 진척 없어
민간단체 활동만으로는 한계

국가보훈처가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351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포상자 가운데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11명이다. 이런 가운데 마산 출신 여성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 장군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재추진은 난관에 부딪혔다.

열린사회희망연대(이하 희망연대) 김영만 고문은 "광복절에 맞춰 공적 재심사를 신청하려 했지만 추가 자료 발굴에 진척이 없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는 지난해 1월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을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 정부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포상을 신청했지만 같은 해 11월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희망연대는 김명시 장군의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직책이 서훈 탈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2018년 4월 독립유공자 서훈심사 기준에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보상을 검토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1949년 김명시 장군이 사망했을 당시 신문들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북로당 중앙위원 김명시 장군이 구속 이틀 만에 자살했다'는 부평경찰서 발표를 실었다.

독립운동가 김명시
독립운동가 김명시

희망연대는 김 장군의 직책을 증명하는 자료는 경찰 발표가 유일하고, 사실인지 혐의인지도 알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후 김 장군이 북한 정권 수립이 아니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했다는 사실을 밝혀줄 추가 자료를 찾고자 수소문해 왔다.

김 고문은 "당시 경찰 발표 내용을 반박할 자료라도 나오면 좋겠는데 민간단체 활동만으로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애국열사릉에 김 장군의 이름이 없다는 내용 정도를 확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애국열사릉은 북한 측에서 보는 애국자들이 묻힌 국립묘지다. 재일언론인 안동일 씨가 1991년 <역사비평> 14호에 공개한 안장자 명단에는 별다른 직책 없이 항일혁명열사와 혁명투쟁 공로자 명목으로 올라가 있지만 김 장군의 이름은 없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7년 옥살이를 했는데도 서훈되지 않았고, 조봉암 선생과 함께 활동한 행적으로 봐서는 해방 후 사회주의 운동으로 서훈이 불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경험으로 봤을 때 보훈처에서 서훈을 추진한 단체보다 더 방대한 자료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친족 이름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해 정확한 서훈 불발 사유와 확보한 자료 목록 등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김 고문은 "김 장군 형제의 사망일시, 부평경찰서 수사기록, 보훈처 자료 등을 확보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가 필요하다"며 "수소문 끝에 경북에 사는 3촌 관계 친족, 경기도에 사는 4촌 관계 친족 등을 찾아 설득을 이어가고 있지만 거부 의사를 밝혔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오래 지나 친족이지만 가깝게 느끼지 못하는 데다 다들 힘들게 생활한 통에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독립운동가 집안이 결딴난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한편 창원시는 14일 오전 10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뒤편 김명시 장군 생가터에 장군 업적을 기리는 표지판을 세운다고 밝혔다. 희망연대는 지난해 이 자리에 나무 표지판을 세웠다. 시 관계자는 "시가 제대로 표지판을 세워 김 장군을 모르는 많은 시민에게 알리자는 뜻에서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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