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남도의회에서 '경상남도 대일항쟁기 일제 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안' 제출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조례안엔 도내 일제 잔재와 매국행위 관련 실태조사, 친일 반민족 행위자 기념·추모행사 지원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도의회에 제출될 조례안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구체적 정의이다. 왜냐면, 일제 강점기에 순종하고 살았던 대다수 민중도 일제와 공범이 아니냐는 식의 황당무계한 궤변을 잠재우려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친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식의 물 타기 논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특정 행위를 한 사람을 친일부역자로 정의 내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조례안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2003년 만들어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선정기준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을사늑약이나 경술국치와 같은 일제 국권침탈에 협력한 자, 일본 군대 장교나 헌병으로 활동한 자, 학병·지원병·징병·징용·공출·국방헌금 등을 선전하고 강요한 자 및 항일투쟁 경력이 있지만 이후 변절해 일제에 협력한 자와 같이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이유는 친일 반민족이라는 개념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이다. 예를 들어,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로 유명한 이원수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친일 시와 옹호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런 친일 인사의 문학 업적이 뛰어나기 때문에 문학관을 세워도 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창원시는 2003년 이미 만들었다.

애국이 지상 최대 의무라고 주장하려면 애국지사와 매국노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이런 구분이 제대로 되어야 추모와 기억하기라는 다음의 일들이 가능하다. 친일인사들의 추악한 행위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들을 단순히 미워하고 증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슬픈 역사를 결코 반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뼛속 깊이 각인하기 위함이다. 단지 지난 일이니까 이젠 잊어야 한다는 비겁한 변명은 이젠 정말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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