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우리말' 기획을 이어가는 동안 날마다 좋은 우리말 표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주 쓰는 말이니 잘 새기고 즐겨 쓰면 좋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 '땡큐(thank-you)'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 살 아이도 쉽게 내뱉도록 가르쳤지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감사합니다(도움이 되거나 흐뭇하여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인사합니다. '감사합니다'는 한자어 어근인 '감사(感謝)'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같은 뜻의 순우리말에는 '고맙습니다'가 있습니다. 어간 '고맙-'에 있는 '고마'는 '(단군신화)곰-고마-검(신령)'으로 연결돼 '신성스럽다, 존경한다'는 뜻이 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실제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한자어와 고유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 의미나 높임 정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될 수 있으면 우리말 표현을 쓰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쉬운 우리말 기획에 많은 관심 보여 주고, 우리말을 사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누리 : 날씨와 관련된 우리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뙤약볕(되게 내리쬐는 뜨거운 볕)', '땅거미(저녁 해가 진 뒤에 차츰 어두워지는 것)', '눈까비(녹으면서 내리는 눈)'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 봤지요? '꽁무늬 바람(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자국 눈(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내린 눈)', '갑작 바람', '까부랑 번개' 등은 말에서 뜻을 쉽게 유추할 수 있어 쉽습니다. 그렇다면 '누리'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누리'는 '큰 물방울이 공중에서 갑자기 찬 기운을 만나 얼어떨어지는 백색 덩어리'를 뜻하는 '우박(雨雹)'과 같은 말입니다. 앞으로 '누리' 먼저 써 볼까요?

■ 모숨 : 우리말에는 '단(짚·땔나무·채소 따위의 묶음을 세는 단위)', '두름(조기·청어 따위를 10마리씩 두 줄로 묶은 20마리)', '사리(국수·새끼·실 따위의 뭉치를 세는 단위)', '제(한약의 분량을 나타내는 단위·스무 첩)' 등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많습니다. '움키다'에서 비롯된 '움큼'은 '손으로 한 줌 움켜쥔 만큼의 분량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모숨'은 들어보셨나요? 움큼과 비슷한 말이지만 '한줌 안에 들 만한 가늘고 긴 물건의 수량을 세는 단위'로 쓰입니다. '동근이는 담배 두어 모숨을 일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 졸가리 : '소설, 이야기, 연극, 영화에서 핵심이 되는 개략적인 내용', 우리말 '줄거리'는 다 알고 있지요? 훌륭한 밑반찬 재료인 고구마·배추 줄거리의 '줄거리'는 '가지, 덩굴, 줄기 따위에서 잎을 제외한 부분'을 뜻합니다. 줄거리의 작은 말은 '졸가리'입니다. 기본 뜻은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겨울이 되면 잎이 무성하던 나무들도 졸가리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처럼 씁니다. 그래서 '졸가리'의 또 다른 뜻은 '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입니다. 줄거리와 뜻이 같지요?

■ 띠앗 : 앞서 카스텔라(빵)를 가무렸던 작은 오빠 이야기를 했지만, 우린 참 '띠앗' 좋은 오누이였습니다. 하하. '띠앗'은 '언니 아우(형제 자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뜻합니다. '우애'라는 말을 갈음할 수 있는 말입니다.

'띠앗머리'는 띠앗을 낮추어 이르는 말입니다. '집안끼리 띠앗머리가 이렇게 사나워서야 되겠습니까?' 김주영 소설가 <객주>에 나오는 말입니다.

■ 가무리다 : 어릴 때 먹을 것 앞에 두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오빠나 저나 기를 쓰고 서로 미뤘습니다. 저는 심부름을 다녀오면 오빠가 맛있는 음식을 가무려 버렸기 때문에 싫었고, 오빠는 동생도 그럴까 걱정이 되었겠지요. 하하. '가무리다'는 '몰래 혼자 차지하거나 흔적도 없이 먹어 버리다'는 뜻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게 숨기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때 엄마는 왜 심부름 간 제 몫으로 따로 음식을 가무려 두지 않았는지 늦었지만 물어봐야겠습니다. 특히, 그때 그 카스텔라(빵).

■ 우수리 요즘은 카드로 계산하는 일이 더 많아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셈 공부도 시킬 겸 우수리 계산을 자주 맡겼습니다. '우수리'는 '물건값을 빼고 거슬러 받은 돈'을 뜻합니다. '우수'라고도 하고, '거스름돈'과 비슷한 말이지요. '우수리'는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부엉이셈'으로 우수리를 제대로 못 받아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엉이셈'은 '어리석어서 이익과 손해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셈'을 뜻하는데, '셈에 어두운 사람'을 빗대어 '부엉이셈 치기'라고도 한답니다.

■ 다님길 : 사람이 다니는 길을 흔히 '인도(人道)'라고 합니다. 토박이말에는 '다님길'이 있습니다. 쉽고 정겨운 말인 '다님길'은 가게 이름에 많이 쓰입니다.

도내에서는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한 식당이 가게 이름을 '다님길'로 쓰고 있습니다, 여행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에도 '다님길'이 있습니다. 지나다닐 때마다 보는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을 빌려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인 '차로(車路)'는 토박이말로 어떻게 바꿔쓸 수 있을까요? 다른 말도 있지만 '차 다님길'로 정해도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 갈말 : 전문가들이 쓰는 학술 용어는 몇 번을 들어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학술 용어'라는 말 자체는 어렵지 않나요? '학술어(학술 용어)'를 뜻하는 토박이말은 '갈말'입니다.

학문을 뜻하는 '학(學)'과 같은 우리말에 '갈'이라는 말을 썼는데, '음성학'은 '소리갈', '문법학'은 '말본갈', '한글학'은 '한글갈'이라고 했습니다. 더 쉽지요?

'이 표현들을 확정된 갈말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틀거지 : 어릴 때 같이 까불거리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지금은 나이보다도 틀거지가 있어 보여 어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틀거지'는 '듬직하고 위엄이 있는 겉모양, 태도'를 뜻합니다. 틀거지가 있는 것을 '틀지다'라고 하는데, '그도 한두 살씩 먹어 가면서 조금씩 틀져 갔다, 틀진 모습이 나타났다'라고 쓰입니다. '자세히 두고 보니 자기와 나이 걸맞은 점잖고 틀거지가 있어 보이는 진중한 청년이니 만만치가 않고 말을 함부로 붙이기가 어려웠다.'(염상섭 <일대의 유업> 중) 

■ 버림치 : 삶이 풍요롭고 편리해지는 것은 좋지만, 우리 둘레를 보면 버림치가 된 것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버림치'는 '쓰지 못하게 되어 버려둔 물건'을 뜻하는데, 요즘 버림치를 보면 새것도 보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림치'는 새로운 말에 밀리고 '고물, 구닥다리, 골동품'이라는 말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쓸모가 많은 말입니다.

■ 두남두다 내 눈에는 한없이 예쁘기만 한 자식이라도 무작정 두남두다 보면 버릇이 나빠지겠지요. '두남두다'는 '잘못을 했는데도 역성을 들다, 가엾게 여겨 도와주다'는 뜻입니다.

또 '두남받다'는 '남다른 도움이나 사랑을 받다'는 뜻입니다. 옛말(속담)에 '호랑이도 자식 난 골에는 두남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진 짐승도 제 새끼를 두고 온 골은 힘써 도와주고 끔찍이 여긴다는 뜻으로, 비록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식 일은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며 잘해 준다는 것에 빗대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사정이 없을 수 없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 가축 : '가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집에서 기르는 짐승'일 겁니다. 그러나 이때 가축은 '家畜'이고, 토박이말 '가축'은 '물건이나 몸가짐 따위를 알뜰히 매만져 잘 간직하거나 거둠'이라는 뜻입니다. 가을, 겨울을 하루에 번갈아 겪는 요즘 같은 때, 몸을 가축하는 일에 더 힘을 써야겠습니다.

'올망졸망 화초들을 분에다 심어 놓고 그것을 가축하는 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낙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고수련 : '고수련'은 '앓는 이를 돌보고 살피며 모시는 일'을 뜻합니다. '간병(看病)', '병간호(病看護)'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를 '고수련'이라고 하는 사람은 주위에 없습니다. 찾아보니 요양원, 병원 이름이나 어르신 돌봄 봉사 동아리 이름에 '고수련'이 쓰였습니다. 앓는 이를 돌보고 시중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간병인'이라고 하는데, 오늘부터 '고수련이'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애기 서는 사람 고수련하랴, 그 대단한 법관 사위 대접하랴 눈코 뜰 새 있을 줄 알아?' (박완서 <도시의 흉년> 중)

■ 눈시울 : '시울'은 약간 굽거나 휜 부분의 가장자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긴 타원형인 배의 가장자리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 줄인 현(絃),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인 현(弦)도 시울이라고 했습니다. 시울은 눈이나 입과 어울려 사용되고, 혼자서는 잘 안 쓰입니다. '눈시울'은 '눈 가장자리를 따라 속눈썹이 난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감정이 복받쳐 울음이 나오려고 할 때 눈 가장자리가 먼저 발개지는 데서 온 말입니다. '입술'은 '입시울'을 거친 말입니다.

■ 가멸다 :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한때 광고에서 많이 듣던 말이지요? 토박이말이 조금 더 널리 쓰여 '여러분, 모두 가멸이 되세요'라고 덕담을 주고받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가멸다'는 '가진 것이 넉넉하고 많다'라는 뜻입니다. '가멸다'는 관형사형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그럴 경우는 '가면'이 됩니다. 쓰임을 보면, '가면 백성, 가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쓰임이 많은 건 '가멸차다, 가멸찬'입니다. '넉넉하고 풍족하다'는 뜻이지요. 간혹, '멸'과 '차'라는 말 때문에 '가멸차다'고 하면 '모질고 싸늘하다'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귀잠 우리말에는 '잠'을 나타내는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주 깊이 든 잠을 '귀잠'이라고 합니다. 귀잠이 들면 누가 아무리 깨워도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지요. 비슷한 말로 '단잠(아주 달게 곤히 자는 잠), 한잠'이 있습니다. 가끔 모든 일을 놓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귀잠'의 반대말은 '수잠'(얕게 살짝 든 잠)입니다. '여윈잠(깊이 들지 않은 잠), 선잠(깊이 들지 못하거나 흡족하게 이루지 못해서 부족한 잠), 겉잠(깊이 들지 못하는 잠)'도 마찬가지로 귀잠의 반대입니다. 잠자는 모양에 따라 '개잠, 나비잠, 말뚝잠, 새우잠, 앉은잠' 등이 있습니다.

■ 모꼬지 : 대학교 때 들었던 '엠티(MT)'라는 외국어를 초등학생 딸아이에게서 들으니 그 또한 마음이 불편합니다. '엠티(MT)'는 멤버십 트레이닝(membership training)을 줄인 말로, 단체 구성원들이 친목, 화합을 위해 갖는 모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엠티'를 대신해 '모꼬지'라는 말도 널리 쓰입니다. '모꼬지'는 '놀이, 잔치와 같은 일로 여러 사람이 모임'을 뜻합니다. "올해는 계획했던 모꼬지가 취소돼 아쉽지만, 괜찮아요. 다시 봄은 오니깐요."

■ 머드러기 :시장에 자주 가시나요? 과일이나 채소, 생선 따위의 많은 것 가운데서 다른 것들에 비해 유독 굵거나 큰 것이 있는데 '머드러기'라고 합니다.

"아주머니, 그렇게 머드러기만 골라 가시면 어떡해요?"라는 말을 예전에는 주고받았다고 하지요. '머드러기'는 사람으로 치면 여럿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머드러기를 뺀 나머지는 뭐라고 할까요? '지스러기'라고 하는데, '고르고 남은 찌꺼기나 부스러기, 또는 마름질하거나 베어 내고 남은 것'을 뜻합니다. 이런저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어도 스스로 '지스러기'라고 여기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머드러기'입니다.

■ 암팡지다 : 15일 자 우리 신문 문화면 기사에 '퓨전 플라멩코 옴팡'이 소개됐습니다. '속이 차다, 당차다'는 뜻의 '옴팡지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지요.

'몸이 작아도 힘차고 다부지다'는 뜻의 '암팡지다'도 비슷하게 많이 쓰입니다. 작은 사람이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이지요. 북한에서는 '들러붙거나 모여든 것이 보기에 빽빽하고 촘촘하다'라는 뜻으로 쓴다고 하네요. '꼬마는 엄마가 하는 말에 암팡지게 대꾸를 했다.'(표준국어대사전)

■ 곰비임비 : 어제 '시나브로'를 알아봤지요? 오늘은 '사물이나 어떤 일이 눈에 띄게 변해 가는 것'을 뜻하는 토박이말 '곰비임비'를 알아보겠습니다. '곰비임비'는 경사스러운 일 또는 어떤 일이 거듭 쌓이거나 연거푸 일어난다는 뜻으로 쓰여 가게 이름이나 동아리 이름으로 종종 사용되는 말입니다. 옛말은 '곰븨님븨' 또는 '곰븨임븨'라고 합니다.

'잠시 쉬느라고 지체된 시간을 메우려고 우리는 곰비임비 재촉하여 뛰다시피 걸어갔다'고 쓰면 됩니다. 풍성한 가을에는 경사스러운 일만 '곰비일비' 일어나길 바랍니다.

■ 시나브로 : 가을이 되면 들에는 '시나브로' 곡식이 익어 갑니다. 곧 있으면 길가에 '시나브로' 낙엽이 쌓이기 시작할 테지요.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조금씩'이란 뜻입니다. 사물의 변화나 어떤 일의 진행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느릿느릿 이루어지는 것을 '시나브로 ~하다'고 합니다. '살금살금'과 뜻이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하나씩 토박이말을 익히다 보면, 우리말이 시나브로 외래어·외국어보다 쉬워지겠죠? 

■ 여우볕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제법 쌀쌀하지만, 낮에는 햇볕이 들어 포근합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볕'은 정말 반갑지요? '여우볕'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여우비'도 있습니다. '맑은 날 잠깐 오다 그치는 비'를 뜻합니다. 별과 눈도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면 '여우별', '여우눈'이라고 합니다. '여우볕에 콩 볶아 먹는다'는 옛말은 하는 짓이나 움직임이 매우 재빠름을 빗대 이르는 말입니다. '여우볕'이 난 걸 보고 날이 완전히 갠 줄 알고 집을 나섰다가 낭패를 보면 안 되겠지요? 집을 나서기 전 날씨는 꼭 확인하세요.

■ 겨끔내기 : 우리는 공을 차는 것을 '공차기'라 하지 않고 '축구(蹴球)'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축구를 할 때 이기고 지는 것이 가려지지 않을 때 '승부차기'를 합니다. 이때 '겨끔내기'로 가리지요. '겨끔내기'는 '서로 번갈아 하기'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맞벌이를 하는 집이 많아, '집가심(집청소)'도 서로 '겨끔내기'로 하는 집이 많습니다. '양복과 두루마기를 겨끔내기로 입었지만 사람들은 양복쟁이라고 할 만큼 양복이 태가 났고….' (박완서 <미망> 중)

■ 홀소리·닿소리 : "왜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자어인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을 배워야 하나요?"

맞습니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낫을 그리고 기역 자를 배우면서 '아들 자(子)·어미 모(母)·소리 음(音)' 한자어를 같이 익혀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ㅏ', 'ㅑ', 'ㅓ', 'ㅕ', 'ㅗ', 'ㅛ'… 모음은 다른 소리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홀로 나는 소리라 하여 토박이말로 '홀소리'라고 합니다. 자음은 '닿소리'입니다. 말소리 가운데 그 소리가 제 홀로는 나지 못하고, 곧 홀소리에 닿아야만 소리가 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뜻을 이해했다면 '자음'과 '닿소리' 중 어떤 말이 더 쉬운가요? 아이들에게 한자어를 먼저 가르치는 어른이 고개 숙여야 할 한글날입니다.

■ 오롯하다 : 우리는 흔하게 '완벽하다'는 말을 씁니다. 그 말을 가지고 '완벽남', '완벽녀'라는 새로운 말도 생겨났지요. 이 말을 만든 처음 사람이 '완벽(完璧)하다'는 한자말 대신 '오롯하다'는 우리말을 먼저 익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오롯하다'는 '남고 처짐이 없이 고스란히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이 말을 더 자주 사용했다면 '오롯남', '오롯녀'라는 새로운 말이 자리 잡았겠지요. '바리바리 싸 보낸 반찬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오롯하게 담겨 있었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가심 "디저트(dessert) 뭐 먹을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자" 하고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디저트, 후식을 대신할 우리말에는 '입가심'이 있습니다. '입가심'은 '(무엇을 먹거나 마심으로써) 입안을 개운하게 가시어 냄'이란 뜻입니다.

'입가심'은 그래도 한 번쯤은 들어봤어도, 그냥 '가심'은 생소하다고요? '가심'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물 따위로 깨끗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집 안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집 청소' 말고 '집 가심'이라고 쓰면 됩니다. 밥 먹은 뒤 숭늉으로 볼을 씻어내면 '볼가심'이라고 하고, 부아를 가시게 하는 일(화를 누그러뜨리는 일)은 '부앗가심'이라고 합니다.

■ 깜냥 '스펙(Spec)'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영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직장을 구할 때나 입시를 치를 때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의 평가 요소를 말합니다. 스펙을 대신하는 우리말은 '깜냥'입니다. '깜냥'은 '어떤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을 뜻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스펙업(spec up·더 나은 학력·학점·자격증 따위를 얻고자 노력하는 일)'을 우리말 순화어인 '깜냥 쌓기'로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깜냥껏'은 '어떠한 일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란 뜻이고, '깜냥깜냥'은 '저마다 능력대로'라는 뜻으로 다양하게 쓰입니다.

■ 곰살궂다 :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 말을 써야 할 때 '곰살궂다'를 떠올려 쓰면 좋겠습니다. '곰살궂다'는 '됨됨이나 품(태도)이 부드럽고 고분고분하다, 친절하다'는 뜻입니다. 비슷한말로 '곰살갑다'가 있고 '매우(몹시) 곰살궂다'라는 뜻인 '곰살맞다'가 있습니다. 추석에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곰살궂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눠보길 바랍니다.

■ 갈마들다 : 하루 동안 낮과 밤이 '갈마드'는 것처럼, 기쁨과 슬픔이 '갈마드'는 것이 삶인 것 같습니다. 슬픔만 오는 법은 없지요.

'갈마들다'는 '서로 번갈아 들다'는 뜻입니다. '교체하다(대신하여 바꾸다), 교대하다(일을 서로 번갈아하다)'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쓰면 좋겠습니다. '착잡한 생각들이 끝없이 갈마들었다.', '나는 동생과 갈마들며 병실에서 간호를 하였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희나리 : '~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구창모 가수의 '희나리'라는 노래를 아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대부분 아는 듯합니다. '희나리'는 '덜 마른 장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집에서 장작을 지펴볼 일이 없으니 점점 들을 일도 없는 말이 됐습니다. "딱딱 희나리 튀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어릴 때의 캠프파이어를 떠올리게 한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아름차다 윗사람이 버거운 일을 시키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그 일은 내게 너무 아름차다"고 말해보세요. '아름차다'는 '힘에 겹다'란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아름'은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를 뜻하는데, 한 아름이 넘으면 '아름드리'라고 합니다. '아름'에 '차다'가 더해졌으니 '아름에 차서 힘에 겹다'라는 뜻이 됐습니다. 아름찬 일은 '울력'(힘을 합하다)하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아시죠?

■ 시부저기 '시부저기' 시작한 일인데 뜻밖에 결과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시부저기'는 '거의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라는 뜻이 있는 토박이말입니다. 홀소리 하나에 뜻이 달라지는 '사부자기'는 '힘들이지 않고 살짝 가볍게'라는 뜻입니다. '사부자기'는 작은말, '시부저기'가 큰말입니다. 경상도에서는 '시부지기'라고 많이 쓰지요.

"그는 앉으란 말이 없었는데도 청 끝에 시부저기 걸터앉았다."(우리토박이말 사전)

■ 윤슬 : 요즘같이 햇살과 바람이 좋은 때, 바닷가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윤슬'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합니다. 비슷한 말로 '물비늘'이란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순우리말입니다. 부르기도 좋고 뜻도 예쁜 '윤슬'은 요즘에는 사람 이름과 가게 이름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윤슬아~" 하고 부르면 반짝이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나요?

■ 마루지 : 부산시는 영화의전당 일원에 '월드시네마 랜드마크 조성' 사업을 추진하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이나 행정기관에서 '랜드마크'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어서 '상징물'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루지'는 들어보셨나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라는 뜻으로 '랜드마크'를 대신할 수 있는 우리말입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말이라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경남에도 한글 마루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지 않을까요?

■ 고갱이 : '고갱이'는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 있는 연한 심'을 뜻하는데, '배추 고갱이'라고 들어 봤나요? 이와 함께 '고갱이'는 '사물의 가운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어 공부에 더 정성을 쏟는 아이와 어른들에게 '코어(core)'와 같은 뜻이라고 하면, 바로 '핵심(核心)'이라고 이해하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그의 삶 속에는 민족자존이라는 고갱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표준국어대사전)

■ 늘품 '늘품이 있어 보인다.'(표준국어대사전)

신기하게도 '늘품'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려지지 않나요? '늘품'이란 '앞으로 좋게 나아질 됨됨이, 가능성(可能性)'이라는 뜻입니다. 늘품 없는 아이를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조급한 어른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여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기부 소식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다기보다 평소 '여투어' 두었다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투다'는 '물건이나 돈을 아껴 쓰고 그 나머지를 모아 둔다'는 뜻입니다. '저축하다'는 말을 써야 할 때도 떠올려 쓰면 좋은 말입니다. '여퉈 놓았던 곡식이나 계단 따위를 이고 지고 가봤댔자 돈 사서 사올 수 있는 건 바늘이나 실, 급한 농기구가 고작이었다.' 박완서 <미망> 중.

■ 갈무리 : '정리정돈(整理整頓)'은 마음뿐, 늘 실천이 어렵습니다. 우리말에는 '갈무리'가 '정리·정돈'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물건 따위를 잘 간추리거나 간수하다'는 뜻인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의 갈무리 때문에 바쁘셨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옆 사람에게 일의 갈무리를 부탁했다'(표준국어대사전)는 보기가 있습니다.

■ 적바림 : '나중에 보려고 글로 간단히 적어 둠, 또는 그렇게 적어 놓은 것'이라고 문제를 내면 10명 중 9명은 '메모'라고 답할 겁니다. '메모'는 외래어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같은 뜻의 '적바림'이 있습니다. '적발'은 '적바림하여 둔 글'이란 뜻입니다. 메모라는 말과 함께 '포스트잇'도 많이 쓰이고 있지요. 국립국어원에서는 '붙임쪽지'라는 말로 다듬어 쓰자고 제안하지만, 토박이말에는 더 쉬운 '찌'(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려고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 도린곁 : 도서벽지(島嶼僻地)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크고 작은 여러 섬(도서)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으슥하고 외진 곳(벽지)을 뜻합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지역으로 '도서·벽지 교육진흥법'도 있습니다. 여기서 '외딴'은 모든 것 외지게 하는 관형사인데, '도린곁'에서 '도리다'가 그런 뜻입니다.

'둥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다'는 '도리다'와 '옆'을 뜻하는 '곁'이 합쳐진 '도린곁'은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외진 곳 또는 구석진 곳'을 뜻합니다. 벽지-외딴곳-도린곁 같이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 비기다 '비기다'라고 하면 가장 먼저 '서로 실력이나 점수 따위가 같거나 비슷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는 뜻이 떠오를 겁니다. '서로 견주어 보다'는 뜻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자식의 마음을 감히 부모의 마음에 '비길' 수는 없겠지요.(표준국어대사전) 그런데, '비기다'는 '비스듬하게 기대다'는 뜻도 있습니다. '난간에 비기어 서면 위험해'(고려대 한국어대사전)라고 쓰입니다.

그 밖에 '비기다'에는 '뚫어진 구멍에 다른 조각을 붙이어 때우다'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구멍 난 양말에 다른 헝겊을 비겨 꿰매 신었답니다.

■ 풀치다 : 잠깐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거친 말싸움으로 이어질 때가 있지요? 조그만 잘못은 '풀칠' 수 있으면 그렇게 싸우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풀치다'는 '맺혔던 생각을 돌리어 너그럽게 덮어주다'는 뜻입니다. '용서하다'는 말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풀쳐 생각'으로 명사로도 쓰입니다. 남모르게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 '속생각', 엉뚱한 생각, 다른 데로 쓰는 생각은 '딴생각', 상대편 속은 모르면서 한쪽으로만 하는 생각은 '외쪽 생각'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생각은 '풀쳐 생각'이네요.

■ 콩켜팥켜 : 시루떡을 만들 때 쌀가루를 넣고, 그 위에 콩을 넣고, 다시 쌀가루를 넣고 그 위에 팥을 넣고 이렇게 층층이 쌓아나갑니다. 그런데 쌀가루와 콩, 팥을 한꺼번에 시루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디까지가 콩이고 어디까지가 팥인지 몰라 '일이나 물건이 뒤섞여서 뒤죽박죽된 것'을 '콩켸팥켸'라고 합니다.

앞서 '켯속'이란 말을 배우면서 '켜'가 '층'을 뜻한다고 배웠지요?

'콩켸팥켸'는 '콩켜팥켜'가 변한 말입니다. 어원을 알면 쉬운 우리말, '뒤죽박죽, 뒤범벅, 엉망진창' 말고 '콩켸팥켸'도 기억합시다.

■ 거우다 : 요즘 아이나 어른이나 화가 나면 '빡치다'는 말을 자주 쓰는 걸 봅니다. '빡치다'는 '화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이럴 때 '거우다'라는 순우리말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거우다'는 '건드리거나 집적거려 성나게 하다'는 뜻입니다. '빡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거우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로 쓰면 됩니다.

"나는 철호가 내 성미를 거우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가 버렸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곱빼기 : 음식점 차림표를 보면 '곱빼기'라고 적힌 곳이 있고 '곱배기'라고 적힌 곳도 있습니다.

'배'가 2배, 3배 할 때의 배라고 생각하지만, '곱빼기'는 '곱'과 '빼기'가 더해져 만들어진 말입니다.

'곱빼기'는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이라는 뜻의 '곱절'과 어떤 말의 뒤에 붙어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뜻을 더해 주는 '-빼기'가 더해진 말입니다.

'곱빼기'는 '음식의 두 그릇 몫을 한 그릇에 담은 분량'이란 뜻 말고도 '같은 일을 두 번 거듭하는 것'이란 뜻도 있습니다.

괜히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가 욕만 '곱빼기'로 얻어먹었던 기억은 다들 한 번씩 있지요?

■ 뒤치다꺼리 : 오늘은 '뒤치닥거리', '뒤치닥꺼리'로 쓰여 헷갈리는 우리말 '뒤치다꺼리'를 알아봅니다. 발음이 비슷하고 글자 모양으로는 '뒤치닥거리'가 맞을 것 같지만, 표준어는 '뒤치다꺼리'입니다.

'뒤치다꺼리'는 명사 '뒤'와 '치다꺼리'(남의 자잘한 일을 보살펴서 도와줌. 또는 그런 일)의 합성어로, '뒤에서 일을 보살펴서 도와주는 일', '일이 끝난 뒤에 뒤끝을 정리하는 일'을 뜻합니다.

퇴근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부모들, 모두 응원합니다.

■ 거울지다 : '거울'은 우리말로 물체의 모양이나 형상을 비추어 볼 수 있게 유리 따위로 만든 물건을 말합니다. 어떤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지난 역사를(실수를) 거울삼아…'라고 쓰는데, '거울삼다'는 '사람이 어떤 일을 본받거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다'는 뜻입니다.

'거울지다'는 조금 생소하지요? '거울지다'는 '되비치어 보이다'라는 뜻입니다. 말과 몸짓에 사람의 됨됨이가 거울져 보인다고 하지요. 나한테는 너그럽고 남한테는 깐깐한 삶을 살지 않았나 돌아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꽃등 : '최초'라는 말은 들었어도 '꽃등'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나요? '꽃등' 역시 '맨 처음'이란 뜻입니다. '꽃'에는 처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꽃다지'(오이, 가지, 참외, 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에 열린 열매), '꽃물'(곰국, 설렁탕 따위의 고기를 삶아 내고 아직 맹물을 타지 않는 진한 국물)이 그런 뜻을 담은 낱말입니다.

'오늘 학교에 꽃등 온 사람은 누굴까요?'라고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인다면, 아이들도 한자어 '최초'보다 우리말인 '꽃등'을 더 익숙하게 사용하지 않을까요. '꼴등'(맨 끝)의 반대말은 '꽃등'이라고 외우면 더 쉽겠습니다.

■ 가로새다 :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곧잘 가로새어 자식 자랑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옆길로 샌다'는 말을 일상에서 곧잘 하지요? 같은 뜻인 '가로새다'는 '중간에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다'는 뜻입니다. '가로'에는 '옆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로새다'는 '어떤 내용이 비밀이 밖으로 새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 사실이 가로새면 너와 나는 곤란하게 된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고 쓰면 되겠네요.

■ 갈음하다 : "이것으로 인사말에 갈음하고자 합니다"라는 말 들어 봤지요?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하다'라는 뜻의 '갈음하다'는 뜻밖에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가름하다'(서로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가늠하다'(목표나 기준 등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살피다)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사 '갈음'은 갈+음으로 분석되는데, '갈다'(바꾸다, 대체하다)의 어간 '갈-'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음'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대신', '대리', '대행'이라는 말을 '갈음'으로 바꿔 쓰는 건 어떨까요? '대리운전'은 아직은 낯설지만 '갈음몰기'로 같이 쓸 수 있습니다. 

■ 말미 : "일주일만 말미를 주세요."

혹시 '말미'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말미'는 '어떤 일 따위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을 뜻합니다. '말미'는 우리가 흔히 쓰는 '휴가'를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하루를 쓸 수도 있고, 여러 날을 쓸 수도 있는 이 말미를 잘 쓰면 일을 더 잘할 힘을 얻기도 하지요.

'겨를'은 '여가'에 밀리고, '말미'는 '휴가'에 밀려 생소한 말이 됐습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면, 윗사람에게 "하루만 말미를 얻어 쉬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보세요.

■ 집알이 : '집들이' 말고 '집알이'는 아시나요? 흔히 "친구 집에 집들이 간다"고 하는데 이땐 "집알이 간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집들이'는 '이사한 후에 이웃과 친지 또는 친구 등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집알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를 한 사람의 집을 인사로 찾아보는 일'을 뜻합니다. 집주인은 '집들이'를 하는 것이고, 손님은 '집알이'를 가는 것이지요. '집들이'와 비슷한 뜻을 둔 표현으로 '들턱'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을 '턱'이라고 합니다. 또한 '새집에 들거나 이사를 하고 내는 턱'을 '들턱'이라고 합니다.

■ 자리끼 : 23일 방송에 나온 한 장면입니다. 34개월 아이가 "아빠는 자리끼 먹고"라고 말하니, 이를 지켜보던 어른이 "자리끼가 뭐야?"라고 되묻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말 사용이 왜 소중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리끼'는 '잠자리(자리)'와 '끼니(끼)'의 줄임말로 잠자리에서 마시려고 머리맡에 떠 놓은 물입니다.

예전에는 화장실과 물을 마실 수 있는 부엌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요강'(오줌을 누는 그릇)과 '자리끼'가 필수였는데요. 정수기와 냉장고에서 쉽게 물을 먹을 수 있는 요즘 사람들은 쉽게 듣지 못하는 말이 됐습니다.

■ 모래톱 : 푹푹 찌는 더위에 넓게 펼쳐진 '모래톱'과 파란 바다 물결이 절로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모래톱'은 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을 말합니다. 보통 우리는 '모래사장'이라고 말하지요. '모래사장'에서 '사장'은 '모래 사(沙)'에 '마당 장(場)'이란 한자어로 '모래마당'이란 뜻입니다. '모래사장'이라고 하면 '모래모래마당'이 돼 '역전앞', '처갓집'과 같이 이중 말이 되지요.

'톱'은 어원상 '돋다, 돕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돋아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손·발에서 돋아난 '손톱, 발톱'처럼 '모래톱'은 '바다나 강가에 모래가 돋아나와 쌓인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 미쁘다 : 믿음직하고 예뻐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이 떠오를까요? 요즘 아이들은 '미덥다'와 '예쁘다'를 합쳐 '미쁘다'를 신조어로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미쁘다'는 '믿음성이 있다'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미쁘다'는 '미덥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입니다.

'못 미덥다'처럼 '미덥다'는 의심이 깔렸지만, '못 미쁘다'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겉모양을 나타내는 '예쁘다'와도 뜻이 다릅니다. '미쁘다'는 사람 마음씨에만 쓰는 말입니다.

■ 켯속 :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가 울고 있으면, 상황도 따져보지 않고 남은 한 아이를 나무랄 때가 있습니다. '켯속'도 모르고 말이지요. '켯속'은 '일이 되어 가는 속사정'을 뜻합니다.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처럼 종이나 옷감 같은 물건을 포개 놓은 층을 우리말로 '켜'라고 합니다. '켜'의 '속'을 '켯속'이라고 하는데, 그 좁은 틈을 어찌 보지 않고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그러려니 너무도 당연히 믿고 있는데 실제의 켯속은 그렇지 않은 데 문제가 있는 거야." - 박완서 <오만과 몽상>

■ 짜장 : 잠깐, 우리가 먹는 '짜장면'이 아닙니다. '그는 짜장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표준국어대사전)고 보기를 가져오면 쉽게 감이 올까요? 맞습니다. '짜장'은 우리말로 '참말로, 틀림없이, 과연'이라는 뜻입니다. 짜장 쉽죠? 아이들이 한번 듣고 외우는 토박이말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중국말에서 따온 '자장면'이 표준어였는데, 2011년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울력 : 민간기업, 또는 국가 간에 교환하는 합의 문서나 합의 자체를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라고 합니다. 한때 공공기관 보도 자료나 언론에서도 'MOU'라고 적다가 최근에는 '업무 협약'이라고 풀어쓰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울력다짐'이 있습니다.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일하거나, 그런 힘을 뜻합니다. '울력다짐'은 함께 울력해서 일을 하자고 서로 다짐(약속)하는 것이지요. 쉬운 우리말 쓰기, 경남도민일보와 울력다짐할까요?

■ 도리기 :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다 함께 식사를 하고 'n분의 1'로 나눠 내는 것이지요. 비슷한 뜻으로 일본어에서 온 속어로 뿜빠이(分配)가 있고, 갹출·추렴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도리기'는 들어보셨나요? '도리기'는 '여러 사람이 나누어 낸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나누어 먹음,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더치페이라는 단어 대신 '각자내기'라는 단어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요. 휴가를 떠나게 되면 '3박 4일의 여행에서 식사는 모두 도리기를 했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고 한번 말해보세요.

■ 갈림길 : 한 길로 걸어가다 길이 두 개 이상 갈리는 상황을 종종 접합니다. 어떻게든 한쪽을 선택해 계속 걸어가야겠지요. '갈림길'의 기본 의미는 '여러 갈래로 갈린 길'로, 앞으로 갈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로(岐路)'가 '갈림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생사 기로', '기로에 선 ○○당' 등 언론에서 자주 쓰고 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쓰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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