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거창 분산성 존재가 하나씩 밝혀지며 관심을 끌고 있다. 분산성은 거창분지 중심에 있는 235m 평강산 정상부를 둘러싸며 만든 산성이다. 옛 문헌에는 성산 또는 성산고성, 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국문헌과 대동여지도 등에는 '삼한시대 축성된 둘레 3리 규모의 거창 지역 대표 산성'으로 소개되어 있는 성이다. 가야시대 소국 거열국에서 만든 성을 이후 신라가 세력을 넓혀 지금 형태로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연구원은 최근 성 규모와 형태, 유적분포 등 분산성 정밀지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분산성은 전체둘레 839m 중형급 신라 산성이다. 성 형태는 비교적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 발굴조사에 들어갈 경우 지표조사에서 확인한 성벽과 건물터, 집수터 등 성내 시설을 확인해 분산성 실체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분산성과 인접한 가야시대 개봉무덤군과 함께 신비에 싸인 거열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옛 거창은 지리적으로 가야를 비롯해 신라,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로 지금의 국경 도시였다. 663년 백제 멸망 이후 백제 부흥군이 등장하고 이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다 신라장군 흠순과 천존에 의해 함락된 곳이 이곳 분산성일 가능성이 크다. 거창은 민초들의 삶이 역사적 이야기로 잘 녹아있는 곳이다. 가야 소국에서 국경 도시로, 고려 삼별초 항쟁 후 조정 압박을 피해 거제 주민들이 옮겨온 망명 도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뿐인가, 의로운 항쟁이 끊이지 않았던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사의 비극 거창사건까지. 옛 거창 모습을 밝히는 일은 지금 거창을 알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며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없다. 분산성 발굴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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