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여성친화도시 위해서는 성인지 감수성 활발히 작동해야
부당함에 저항하는 여성 목소리 소외받지 않는 분위기 조성 중요

여성친화도시란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지역 정책에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여성의 성장과 돌봄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지역'이라 설명하고 있다. 전국 성평등지수 최하위 경남에는 김해시, 양산시가 여성친화도시로 지정(2011년 지정, 2016년 재지정)됐다. 2019년 12월 기준 전국 92개 시·군·구가 여성친화도시이다.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되면 5년간 유지되고 이후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창원시는 2011년, 거창군은 2014년 지정됐다가 재지정 받지 못했다. 올해 창원시와 거창군은 다시, 고성군은 처음으로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경남의 반가운 변화다.

◇사라진 '여성' = 지난달 29일 창원시가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위한 원탁토론회를 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이 여성친화도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 참석했다. 토론회를 여는 발제에서 '여성친화'를 설명하는 말이 길었다. '여성친화'에서 여성은 특정 성이 아닌 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는 말이 반복됐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이미 행정용어 자체로 의미가 명쾌한 '여성친화'를 넓은 뜻으로 모호하게 표현할 때 시민에게 여성친화도시 의미가 제대로 공유될까. 여성친화도시를 뜻하는 국제 통용어(woman friendly city)가 있는데 '모두가 행복한 gender city(젠더 도시), 창원'이란 수식어도 의미 전달이 어렵다. 용두사미 보여주기 행사에 그치지 않을까 마음이 삐꺽거렸다.

▲ 창원시, 마산YMCA, 창원여성의전화, 창원여성회부설 젠더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마을을담다, 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창원YWCA가 주최한 창원시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시민 원탁토론회가 지난달 29일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일자리 돌봄 안전 성평등 창원 여성 친화 도시 우리 힘으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시, 마산YMCA, 창원여성의전화, 창원여성회부설 젠더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마을을담다, 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창원YWCA가 주최한 창원시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시민 원탁토론회가 지난달 29일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일자리 돌봄 안전 성평등 창원 여성 친화 도시 우리 힘으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여성들의 목소리 = 조별 토론에 들어가자 여성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경험으로 하는 말이라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상호토론 시간, 다른 주제 원탁으로 이동해서 의견을 내는 순서였다. 내가 있던 성평등 정책 테이블에 오셨던 나이가 좀 지긋한 분이 '성차별 개선 캠페인' 주제에 '신체접촉 금지·처벌', '여사님·사모님 호칭 안 쓰기'라고 쓰셨다. 일상에서 불쾌감을 주는 신체접촉의 경험을 오래 겪으신 듯 얘기를 하시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나이 든 여성에게는 왜 성별 호칭을 쓰는지 모르겠다, 불편하다고 덧붙이셨다. 성평등 교육이나 토론에 참석하면 '지금 시대에 성차별이 어디 있느냐,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남자들이 오히려 차별 받는다'고 어깃장을 놓는 사람을 만난다는 얘기도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한다는데, 그런가, 청년들은 그렇게 느낄까?

◇어느 청년의 목소리 =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는 '경남청소년문학대상' 수상작 중에 '깨달아서 빛나기'(고등부 산문 으뜸·진주여고 3학년 권수민) 작품이 떠올랐다. 글 맥락상 비유적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에서 여성 청년이 겪는 위험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기억에 남았다.

'신호등이 고장 난 횡단보도를 세 번이나 건너야 했고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골목길들 사이의 어두컴컴함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무서웠다…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들어가 볼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마음은 단단했다. '가난해서 불행하지만, 언제나 열심히 살았던 나', '시험공부와 수능 공부와 면접 준비…저녁마다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끔 지쳐 울고 있지만, 이생을 견디는 나는 매일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읽고 쓰는 것으로 스스로 빛을 만들고 빛나는 내일을 발견하겠다고 한다.

청년은 성장하는데 청년이 살아가는 환경, 사회는 어떤가. 여성 청년이 이미 겪고 본 세상의 어둠을 내버려 두고 '너 하기 나름이니 열심히 공부하라'며 '꼰대짓'만 하고 있지 않나.

▲ 양산시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이 지역 초등학생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을 하는 모습. /양산시
▲ 양산시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이 지역 초등학생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을 하는 모습. /양산시

◇성평등한 삶터, 여성친화도시 = 여성친화도시는 지방정부와 행정이 앞장서서 낡은 가부장제의 성별 위계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성중립적이라고 믿었던 정책은 대부분이 남자를 표준으로 삼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여자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여성의 삶을 고려하여 차별, 배제하지 않는 지역을 만들어가겠다는 지방정부의 약속을 중앙정부 여성가족부가 공식 인증해 주는 것이다. 여성친화도시는 도시 전반에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성차별을 인식하는 능력)이 일상화된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여러 나라(도시)에서 여성친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공론화해 시민과 함께 개선하려 노력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평등으로 가는 신호등과 같다. 사람을 이어주는 도로에서 신호등을 보고 안전하게 길을 가듯이 일상에서 성차별을 인지할 때 멈추게 하고 성차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도록 하는 신호등처럼 성인지 감수성이 작동하고 받아들여 활용되는 지역이 여성친화도시가 된다.

◇성평등 실천하는 힘, 성인지 감수성 = 가부장제는 성별을 둘로 나누고 위계를 만들어 유지해 온 사회체계다. 가부장제의 성별 이분법은 여자다움, 남자다움 또는 여성성, 남성성을 고유의 본질인 것처럼 여긴다.

사회학자 캐럴 길리건은 <가부장 무너뜨리기>에서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여성성은 자아를 희생시켜 관계를 우선에 두게 하고, 반대로 남성성은 관계보다 자아를 강요한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여성들은 자신이 본 것,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남성은 폭력을 공모하는 세력에 가담함으로써 관계에서 멀어지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은 물론, 남성다움이 수치를 당하거나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될 때 패악을 부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성인지 감수성은 이러한 상황에서 모순된 삶을 거부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관계를 맺으면서 '부당함에 저항'하여 변화를 만든다.

여성친화도시, 성평등 도시는 완성형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모두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한다. 내달 예정된 2차 토론회에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길 바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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