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말 관리사 2명 또 사망
처우개선·재발방지 합의 무시
노조 "크게 달라진 것 없다"

보름 새 한국마사회 소속 말 관리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을 계기로 민주노총과 마사회가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서를 작성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다.

반복되는 죽음을 막고자 대책까지 나왔지만, 경마 현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마필관리사노조에 따르면 지난 6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내 직원 숙소에서 23년 차 말 관리사 ㄱ(44) 씨가 숨진 채 동료에게 발견됐다. 지난달 21일 오후 7시께는 안양시 한 아파트에서 또 다른 말 관리사 ㄴ(33) 씨가 숨져 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해 신고했다.

ㄱ 씨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ㄴ 씨는 지난 5월 "한국 경마는 우리가 있어서 발전했는데 모든 것은 한국마사회 몫이다", "매년 다치니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라는 등 마사회 비판과 말 관리사 고충을 담은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말 관리사 죽음은 2005년 이후 이번이 여섯 번째다. 말 관리사와 비슷한 처지인 기수까지 포함하면 마사회 내 죽음은 열 번째다.

▲ 지난 2월 8일 한국마사회 과천경마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경남도민일보 DB
▲ 지난 2월 8일 한국마사회 과천경마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경남도민일보 DB

조교사에게 채용된 말 관리사·기수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일찌감치 문제가 됐다. 지난 2017년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말 관리사 산재율은 13.98%로 전국 산업 평균 0.62%의 27배에 이르렀다. 지난해 나온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에선 조사에 참여한 기수 125명 중 75명이 '건강문제로 말미암은 결근일이 3일 이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올해 3월 민주노총과 마사회는 재발 방지 대책에 합의했다. 주요 내용은 △경쟁성 완화 △차별금지 △건강권 보호 △기승계약서 표준안 작성 △기수면허갱신제도 보완 △소득안정 등이었다. 합의 내용 중에는 △2017년 말 관리사 관련 합의 보완도 있었다. 2017년 마사회는 부경경마공원 말 관리사 2명이 열악한 처우에 연달아 목숨을 끊으며 내부 반발이 격해지자, 노조와 조치 사항에 합의했다. 합의서에는 고용승계(협회고용)·임금(최소 생활비 보장)·노조활동 보장·복리후생 등이 담겼는데 3년이 넘도록 지켜지지 않자 재차 이행을 강조한 것이다. 합의서는 경쟁이 유독 심한 부경경마공원 특성을 반영했지만, 현장에서는 서울·제주경마공원 여건도 함께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합의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고광용 공공운수노조 부경경마공원지부 지부장은 "조교사협회에 가입되지 않은 조교사는 여전히 개별적으로 말 관리사·기수 고용을 하고 마사회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며 "조교사협회를 탈퇴하거나, 새로 마방을 개업해도 마찬가지다. 고용불안을 일으키는 조교사에 대한 감독·불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고 지부장은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경마 경기가 제대로 열리지 않은 점도 있지만, 고 문중원 기수 죽음 이후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경쟁을 부추기는 행태, 마사회-조교사-기수·말 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 열악한 노동환경이 결국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숨진 말 관리사들이 잦은 부상과 과중한 업무로 고통을 호소했다는 동료 진술을 받는 한편 ㄱ 씨와 ㄴ 씨 사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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