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산·무학산 조상이 지은 이름
잘못 바꾸면 돌이키기 어려워

'무학산·옥녀봉 등 경남 일본식 지명 바로잡는다'라는 2020년 7월 29일 자 <경남도민일보> 기사는 필자를 놀라게 했다. 창원 지역의 '무학산·정병산·마금산'이 그 대상으로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정병산, 무학산은 우리 조상들이 지은 이름이며, 또한 일제 작명이라는 누명(?)을 쓰고 '난포'에 자리를 내어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의 '남포'가 올바른 이름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애초 '전단산'으로 불린 이 산은 18세기 무렵 '정병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가락왕릉기>(18세기 후반), 의병장 노경종 선생을 기리는 묘갈명(19세기) 등에 '정병산' 세 글자가 선명히 기록돼 있음이 그 증거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창원대 뒷산의 애초 이름은 전단산, 18세기 이후 또 다른 이름인 정병산으로도 불리다가,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정병산으로만 불리고 있다. 한때 지역 유력 인사가 정병산은 일제가 지은 이름이고 애초 이름은 '봉림산(鳳林山)'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음을 덧붙여 둔다.

필자도 한때 무학산은 일제에 의한 작명일 것으로 본 적이 있었다. ''무학산'은 일제에 의한 개칭인 듯'(경남대학보 제732호, 2001. 5. 14.)이라는 글을 통해서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필자가 여러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데서 온 잘못이었다.

'무학산'이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899년 마산항 개항 관련 문서에서다. 1898년 마산항 개항이 결정되자 부산 주재 일본 영사가 마산포로 출장을 와서 조사한 결과를 일본 공사에게 보고한 '마산포에 관한 보고(1898년 7월)'와 일본 공사가 대한제국 외부대신에게 의뢰한 '마산·군산·성진 외국인 거류 지도의 정람(呈覽)(1899년 2월)', 그리고 당시 창원감리가 외부대신에게 보고한 '질품서 41호(1900년 12월)'에 무학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인에 의한 보고서 등에는 '자산·완월·월영' 등 당시 창원 지역 마을 이름도 나오기 때문에, '무학산'만 일제가 작명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초 무학산은 지금 '학봉' 또는 '고운대'로 불리는 봉우리 하나만을 가리킨 이름이었음을 함께 밝혀 둔다.

1993년 일어난 일이다. 당시 마산시청 회의실에서는 '마산시지명위원회'가 열렸는데, 필자도 위원의 한 사람이었다. 그때 필자는 40대 초반 아직 햇병아리 같은 학자였고, 회의를 주도한 분은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어느 대학 사학과 교수님이었다. 그 교수님이 "구산면의 '남포'는 일제 때 일본인이 지은 이름이고, '난포'가 바른 이름이다" 하여 남포를 난포로 바꿔야 함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한 적도 없고 해서 손을 들어 개명에 찬성했다.(10여 명 위원 모두가 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이 돌이키기 어려운 실수였음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뒤, 필자가 1997년 판 <마산시사> '옛 지명' 편을 집필하면서였다. 문헌 검색과 현장 조사를 해 보니, '난포'야말로 족보에도 없는 이름이고 '남포'는 어엿한 우리 이름이었던 것이다. 역사 왜곡의 한 주역이 된 죄책감으로 마산시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한 번 왜곡된 이름을 되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아, 이 기회에 창원시가 이 문제를 반드시 바로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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