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수도권 폭우 피해 소식이 들려왔다. 하동에도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소식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저지대라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침수되기도 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허리 정도였다.

지난 7일 사정을 아는 이웃들이 마트 물건을 허리 높이 위로 옮기는 걸 도왔다. 고마운 마음이다. 저녁이 되자 화개교 아래 1m가량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대처를 해놨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8일 오전 수위가 천천히 오르다 오후가 되자 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모래주머니를 쌓아둔 덕에 강물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수위가 바닥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오후 4시 30분께 강물의 압력을 버티다 못한 출입문이 휘기 시작했다. 곧 터질 것 문을 보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오후 5시께 1층 상황을 확인해보니 물이 천장까지 차올랐다. 상품들이 절반가량 떠내려가고 냉장고가 망가졌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모든 것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다.

9일 오전 10시 30분께 화개면 침수지역을 찾았다. 햇빛은 쨍쨍하고 강물은 빠져나갔지만, 도로 곳곳에 황톳빛 침수 흔적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는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와 소방관·경찰이 피해 복구를 돕고 있었다. 폭우 당시 1층 가게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버스터미널 인근 한 가게 주인 딸인 강모 씨는 심경을 묻자 "당황스러워서 속상하지도 않다. 내일 태풍까지 온다는데 그냥 막막하다"고 말했다.

가게 앞 공터에는 과자며 두루마리 휴지·컵라면·각종 음료 등이 상자와 포대에 마구잡이로 담겨 있다. 형형색색 튜브가 눈에 띄었다. 여름 휴가철 강과 계곡을 찾아온 피서객을 맞고자 준비한 물건일 테다. 폭우 탓에 튜브도, 휴가철 특수도 함께 떠내려갔다.

가게 안에서는 진흙을 씻어내기 전 물건을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아이고 이 아까운 거를." "이거는 멀쩡해서 써도 될 거 같은데 우짜노." 봉사자들은 진흙이 묻은 물건을 포대에 넣으며 연신 한탄을 내뱉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쓸만한 물건만 따로 보관해보지만 주인이 정말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침수된 상품들 중 브랜드가 있는 것은 본사에 보내 새 물건을 받을 수도 있다지만, 워낙 종류가 다양해 그것마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근처 식당 앞에는 냉장고처럼 규모가 큰 주방기구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맛집이었나 보다. 간판은 지상파 방송 3사에 출연했던 사진이 있는데, 간판 속 인물로 보이는 사장님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다 집게차가 선반대 쪽을 향하자 "버리는 거 아녜요"라며 막아선다. 그 막막함, 상실감을 가늠할 수가 없다.

다른 가게 모습도 비슷했다. 가게 앞 도로에는 각종 가구와 집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폭우 당시 완전히 침수해 지붕만 남았던 가게 '윤슬'. 손명권(52) 씨는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겪은 재해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휴가철 앞두고 물건을 더 들여다 놨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며 허탈해 했다. 곧 불어닥칠 태풍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낮 12시가 되자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화개장터 옆에는 대한적십자사 이름이 적힌 천막이 펼쳐졌고, 그 아래 식탁이 차려졌다. 재난구호 급식차량 앞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 음식을 나눠줬다. 메뉴는 제육볶음과 김, 아이스크림 등이다. 줄을 서서 음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두어 숟가락 밥을 먹는데 다시 굵은 비가 쏟아진다.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봉사자를 배웅하던 피해 주민들. 밥은 먹었을까.

하동군은 지난 7∼8일 집중호우로 화개면 346㎜를 비롯해 옥종면 278㎜, 청암면 260㎜, 횡천면 251㎜, 적량면 242㎜ 등 평균 193㎜의 강우량을 보였다. 특히 화개면 삼정마을은 531㎜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이번 집중호우로 하동군에서는 2000년 개장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탑리 현 화개장터가 물에 잠기고, 화개면·하동읍·악양면 일원에서 건물 311동이 침수됐다. 사전 대비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화개면·하동읍·악양면 일원에서 40가구 4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배·벼·블루베리·녹차 등 농경지 74.4㏊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으며, 바지선 1척이 유실되고 선박 14척이 전파 또는 반파됐다. 섬진강 상수도 취수장 1곳과 국도·군도·마을안길 11곳, 하동읍 상하저구·만지배밭·두곡마을·목도마을 등 상습 침수지역에서 피해를 봤다. 군은 전 공무원 비상동원을 내려 피해지역 곳곳에서 종일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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