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동네에서 학교나 가게나 이웃동네에 가려면 작은 도랑을 지나야 했다. 하류로 가면 제법 넓어지고 깊어지는, 지방하천의 상류 지점이었다.

이름이 있었겠으나 그때도 지금도 뭐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도랑 위에는 차도 거뜬히 지나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가 진즉 놓여있었다. 이사를 할 때까지 그 다리를 하루에도 수차례씩 수십 년 건너다녔다. 그러면서 소박하고 정겨운 개울에서도 때때로 물이 천둥 같은 고함을 지르거나 불같이 활활 들고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비가 내리거나 그칠 때마다 도랑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었다.

언젠가 태풍이 상륙했던 날 눈 깜박할 새 불어난 물이 코앞에서 사람들을 휩쓸어가는 걸 봤다는 어르신들은 자주 당부하셨다.

물처럼 무서운 게 없느니라, 항상 조심하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땅의 흐름을 따라, 그래서 그저 순하게만 보이는 물이 그 속에 엄청난 힘을 품고 있다는 걸 우린 자주 잊고 지낸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자연히 흐르는 하천이나 강을 보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물줄기가 콘크리트 지붕을 덮어쓰거나 콘크리트 바닥을 깔거나 콘크리트벽으로 가로막히거나 했는지. 그리하면 인간의 뜻대로 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거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큰 강에 수십 조 돈을 퍼부어 수로로 만들고 그 물줄기를 국가 부흥의 토대로 삼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결국엔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강의 숨통을 조이는 꼴이 된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앞으로는 홍수를 막을 수 있게 된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그게 틀렸다는 건 이번 긴 장마가 보여주고 있다. 막으면 물은 돌아가고, 더 갈 곳이 없으면 어딘가에서 넘친다.

장마전선은 중부지방에 걸쳐있으나 경남에도 태풍 여파로 다시 비가 내린다. 방심한 사이 머리 위로 팔뚝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뜨끔뜨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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