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연구개발 예산 대폭 증가
전략 수립과 사업 기획도 주도해야

1995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이 선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시행되었다. 지방화와 분권화 시대가 열리면서 과학기술정책에서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지역별 과학기술력이 지역발전과 지역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각 지방정부는 점차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자도 조금씩 늘려 갔다.

1999년 제1차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18년 제5차 종합계획(2018∼2022년)이 수립되기까지 지역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되어 왔다.

제1차 종합계획이 수립된 1999년 당시만 해도 국가연구개발 투자의 75%, 연구 인력의 66%, 그리고 국가연구기관의 48% 이상이 수도권과 대덕에 집중되어 있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연구개발 예산 비중은 1997년 기준, 총예산 대비 0.77%(2552억 원)에 불과하여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여건이 취약하였다.

이에 당시 중요한 핵심 목표는 지자체의 연구개발 예산 비중을 확대하고 지방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조직체를 구성하는 등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제5차 종합계획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은 지역예산 대비 과학기술 자체투자 예산비율이 1.4%, 4조 5000억 원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1997년과 비교하면 17배 이상의 엄청난 규모로 예산이 커졌다. 또한 지역주도 혁신성장을 위해 지방정부의 지역혁신 리더십 구축, 지역혁신 주체의 역량 극대화 및 지역혁신 성장체계 고도화 등 전략에서도 발전적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연구 인력의 서울·경기 비중은 2005년 55.7%에서 2018년 60.2%로 오히려 증가했다. 지역의 연구개발 예산은 크게 증가했으나, 연구 인력의 수도권 집중은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밀집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의 연구개발 예산도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고유한 사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부분 지방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중앙정부의 큰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자금(매칭펀드)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쩌면 중앙정부가 해야 할 국가 연구개발사업 예산 일부를 지방정부에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제1차 종합계획 시행 이후 외형적으로 지방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으나, 내용상으로 중앙집권적인 과학기술진흥정책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과학기술 진흥에서 각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틀에 지방정부가 맞춰가는 모양새이다.

제5차 종합계획에서 '지역주도 지역혁신'을 강조한 것도 지방정부의 이러한 중앙정부 의존적 형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도적 연구개발과 혁신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 지방정부가 '지역연구개발 예산투자 결정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 사업에 지방정부가 매칭하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전략수립과 사업기획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체 R&D 기획·관리 역량과 조직을 강화해야 하고, 효율적인 지역혁신 행정관리체계(거버넌스) 재편이 필요하다.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한국판 뉴딜 등에서 보듯 국가적 위기와 기회 대부분은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만큼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 지역 현안과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방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이끌어가야 한다. 지역이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대전환이 있어야 진정한 지역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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