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근처 원룸 얻고 집은 빌려줍니다
내 몸 누일 곳 있다면 충분하지 않나요

저는 임차인이면서 임대인입니다. 직장 근처에 원룸 얻어 살고 있으니 임차인이고, 원래 살던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으니 임대인이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화장실과 부엌, 침실이 분리되지 않은 방에서 살아온 지도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집은 직장 일 마치고 저녁에 들어가 쉬는 곳. 또 책 읽다가 영화도 보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간혹 맛있는 안주에 술 한잔할라치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알기엔 집과 방의 용도는 원래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술 한잔에 기분이 좋아져 문득 유행가 가사가 떠오릅니다. '하늘땅 바람 소리 새 소리 공짜', '해와 달 별을 보며 꿈을 꾸는 거 공짜.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도 공짜. 무엇을 더 바라 욕심 없이 살면 되지 당신의 웃음도 공짜.'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은 불러주는 이에게만 친구가 됩니다. 바람 소리, 새 소리도 느낄 줄 아는 사람에게 들려옵니다.

과연 수백억짜리 건물 소유한 사람, 아파트 시세 차익만 수십억 얻은 사람에게도 이런 느낌이 다가올까요? 어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단 생각도 듭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수도권, 특히 서울 집값에는 별 관심 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올랐다 해도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입니다. 한강 수계 댐들이 방류를 시작하면 홍수 피해 걱정에 귀를 쫑긋 세우지만, 잠수교가 닷새째 전면 통제 중이라는 뉴스에는 별 관심 없습니다. 지방(?)에 사는 우리가 왜 잠수교 통행 제한을 그토록 궁금해해야 할까요?

알고 보니 언론이 온통 서울 중심으로 보도를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집값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별 관심 없지만 '공평함의 문제', '형평성의 문제', '정의의 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갑니다. 직장인들은 평생 벌어봤자 고작 아파트 한 채, 차 한 대 정도 벌이로 살아가는데 세상에나 부동산 투자로 수십억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사실에는 분노가 막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이 사는 땅은 우리나라 토지 면적을 전 국민 수로 나누어 나온 값만큼이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땅값이 오를 것 뻔히 알면서 그 땅을 사두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환경운동 한다는 사람이 욕심내서 땅을 사면 곤란하지.' 평소 지론으로 생각했던 소신이 허무해지기까지 합니다. 내가 소유한 땅과 집은 사는 곳 이상의 기능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평소 저의 지론이었습니다.

작금의 부동산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을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부동산 불평등은 기대 수익을 낮추고 조성된 재원을 모든 국민에게 나눠줌으로써 해소할 수 있습니다.' 23억의 불로소득 시세 차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아까워하지 마시고, 먹지도 자지도 않고 수십 년 월급 모아야만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서민들을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파트값이 오르면 정말 누구나 행복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물질적 부와 그 물질적 부를 누리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가 시간에서 나옵니다. 또 행복은 만족감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물질적 부와 여가 시간을 적절히 조절해서 얻은 만족감을 더욱 많이 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저는 서울 아파트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임차인이면서 임대인이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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