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거치며 알록달록 "급변하는 세상 속 느림의 미학 간직"
여전히 남아 있는 낡은 골목 속 단추가게·여관 등 옛 추억 새록

오래되고 낡은 골목은 그 자체로 어떤 문화적인 힘이 있다. 바래고 갈라진 틈새마다 삶의 손때와 땀내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난한 삶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은 골목여행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골목은 도시재생으로 예쁘게 꾸며졌다. 이런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며 하는 추억 여행도 좋지만, 문득 들어선 낡은 소골목에서 오랜 삶의 손때와 땀내를 만나는 일도 나름 즐겁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136번지 앞. 이곳은 한때 중고생들이 몰래 담뱃불을 비벼끄던, 창동의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골목 입구를 가로지른 2층 집은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이 살던 곳이다. 몇 년 전 골목에 뉴질랜드 카페 리빙앤기빙이 들어서며 새삼 밝고 운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 우신장여관 골목. /이서후 기자
▲ 우신장여관 골목. /이서후 기자

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건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오성사 골목.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조금은 퇴색하고 쓸쓸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 끝 정면을 보이는 오성사는 한때 유명한 단추가게였다. 부림시장 주변 양장점이 한창 많을 때 마산에서 만든 옷 단추는 다 이곳에서 샀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제 좋은 시절 다 지나갔는지는 몰라도, 여전한 간판만으로도 많은 느낌을 준다.

오성사 앞에서 리아갤러리로 통하는 좁은 골목도 운치가 있다. 현재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쓰이는 건물 뒤편이다. 옛날에는 벽돌이 드러나 갈라진 틈새로 풍성하게 이끼와 풀이 자랐었다. 그 모습이 좋았는데, 롤러스케이트장이 들어서며 벽을 수리해 그 운치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좁은 골목이 주는 아기자기한 맛은 여전하다.

리아갤러리 앞을 지나 큰길로 나가기 직전 왼쪽으로 우신장여관 가는 골목이 있다. 원래 더럽고 냄새도 나서 사람들이 잘 안 가던 곳이었는데, 화려하게 색이 칠해지면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했다. 물론 지금도 사람들이 잘 찾지는 않는데 오히려 그렇기에 한적한 맛이 더해졌다. 우신장여관은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데, 2018년 10월 여관의 텅 빈 객실들을 활용해 인상적인 전시가 벌어진 적이 있다.

▲ 창동예술소극장 건너편 250년 골목 입구. /이서후 기자
▲ 창동예술소극장 건너편 250년 골목 입구. /이서후 기자

창동예술소극장 건너편에서 창동공영주차장으로 이어진 골목도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곳이다. 이곳은 창동예술촌 내 250년 골목길 일부다. 저녁 어스름 한잔하기 좋은 해거름만으로도 골목의 분위기는 충분하다. 여기에 추억의 복희집 같은 오래된 공간과 견실한 맛의 우바리스타, 홍차전문점 살롱드마롱 같은 젊은 공간이 어우러져 창동예술촌에서도 나름 왁자한 골목이다.

 

창동에서 만난 사람들

◇조현제 리빙앤기빙 대표 = 어둑어둑했던 골목길이 환해져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 골목은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의 집터가 있는 곳이다. 현재는 커피와 브런치를 파는 '리빙앤기빙(Living & Giving)'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뉴질랜드 카페로 알려진 곳이다.

조현제(60) 대표가 20여 년간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공간에 가게를 차렸다. 부인과 함께 손수 인테리어를 해 2년여 전 지금의 공간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음침했던 골목에 리빙앤기빙이 들어서면서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칭찬했다.

▲ 창동 뉴질랜드 카페 리빙앤기빙이 있는 골목. 뒤로 보이는 2층집이 남저 이우식 선생이 살던 집이다. /이서후 기자
▲ 창동 뉴질랜드 카페 리빙앤기빙이 있는 골목. 뒤로 보이는 2층집이 남저 이우식 선생이 살던 집이다. /이서후 기자

조 대표는 "한 분이 예전에는 빨리 지나가고 싶은 골목이었는데 사장님 덕분에 골목이 깨끗해져서 이젠 천천히 걷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진짜 기뻤다"며 "리빙앤기빙이라는 상호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1970~1980년대 전국 10대 도시였던 마산. 그 중심은 창동이었다. 그는 "포목점, 양복점, 금은방이 많았고 주말이면 사람들이 밀려서 갈 정도로 북적댔다"며 "아파트가 들어서고 합성동, 댓거리 등으로 상권이 분산되면서 예전만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2년여 카페를 하면서 조 대표는 "(상권이)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창동예술촌, 공영주차장 등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늘었다"며 "창동은 골목여행하기가 좋고 걸으면서 먹고, 즐기고, 쇼핑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 오성사 골목. /이서후 기자
▲ 오성사 골목. /이서후 기자

◇김우현 우바리스타 대표 = 몇 년 전 한 지인이 "여기 커피가 맛있다"고 해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신 적이 있다. 이후 창동을 오갈 때 종종 찾았다. 진한 커피가 인상적인 이곳은 커피와 제철 음료를 파는 테이크아웃 전문점 '우바리스타'다. 김우현(29) 대표가 지난 2016년 1월 차렸다.

김 대표가 마산 창동에서 창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임대료다. 그는 "창업을 할 때 현실적인 문제는 자본금이다"며 "창동은 합성동이나 양덕동보다 상대적으로 권리금, 월세가 저렴해 부담감이 적었다"고 말했다.

합성동, 경남대 부근은 젊은 층이 주요 타깃이지만 창동은 연령대 구분없이 많은 이들이 찾는 동네다. 우바리스타를 찾는 손님 역시 연령층은 다양하다. 김 대표는 "평일에는 은행, 병원, 공공기관에 다니는 손님이 많고 주말에는 창동의 추억을 만끽하려고 온 손님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우바리스타는 일리, 라바차 등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원두를 사용해 커피가 진한 편이다. 과일 음료도 원재료 자체가 주는 신선함과 맛을 되도록 살린다.

김 대표는 "요즘은 모든 게 급변하지만 창동은 천천히 변한다"며 "골목을 걷다 보면 '창동만의 느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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