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기관서 자란 아이들
또래와 생활 공감대 부족하고
기댈 언덕이 없다는 불안도 커
정서적 안정 도울 지원책 필요

스무 살, 즉 만 19세가 되면 모든 청소년들은 법적 성인이 됩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어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 진학률 70%가 넘는 사회에서, 대부분 아이들은 긴 시간 부모 그늘 아래 자립을 미룹니다. 때로는 서른이 넘어서까지 가족의 지원을 받습니다. 꿈을 좇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설레는 마음 한편에 혼란과 두려움을 안고 성년을 맞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란 '보호대상아동'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스무 살 언저리에 시설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보호대상아동의 성년을 축복하고, 제대로 된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경남도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 답을 찾아봅니다. '자의'와 상관없이 '자립'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네 차례 지면에 싣습니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어요. 터널을 지나면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지난 20일 경남도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열어 보호대상아동이었거나, 보호종료를 앞둔 6명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세대 등 다양한 곳에서 자라 자립을 겪었거나 준비 중이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듣고자 서혜빈 '경천공간' 시설장이 대화에 참여했다. 서 시설장은 공동생활가정 출신으로 먼저 자립을 경험하고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보호대상아동을 돌보고 있다.

◇스무 살, 그리고 자립 = 이들은 대부분 마음 한편에 기대감을, 다른 편에는 그보다 더 큰 막막함을 안고 스무 살을 맞았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신영(가명) 씨는 자신의 스무 살을 '대혼란'이라고 표현했다. 무엇이든 홀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 탓이었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 가는 것부터 거처를 구하는 일까지 좌충우돌이었다.

위탁가정 출신 다은(가명) 씨는 "미처 누려보지 못한 성인의 자유를 마냥 기대했지만, 막상 스무 살이 되니 무섭고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가정에서 자란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자립에 따르는 경제적인 부담이 다은 씨 발목을 잡았다.

대학 진학을 선택한 종수(가명) 씨에게 스무 살은 모든 것이 '리셋'(Reset)되는 순간이었다. 스무 살 이전과 이후,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 달라진 법적 지위도 그렇지만 공동생활가정에서 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던 그에게 기댈 곳 없는 외로움은 버티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역시 대학에 다니는 민성(가명) 씨도 혼자라는 고립감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성진(가명)이는 현재 아동양육시설에서 보호받고 있지만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가야 해 불안하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교육을 받아야만 보호가 연장된다. 미성년인 채로 스스로 원하지도 않은 자립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는 "지금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의 부재 = 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기댈 언덕이 없다'는 데 있었다. 보호종료 후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태진(가명) 씨는 "친구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도 집에서 계속 지내거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자취방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용돈을 받는 것도 그랬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데서 차이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대부분 같은 시설에서 자란 형·동생 혹은 친구, 보호시설 사회복지사 등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은 이들의 심정에 공감하기 어렵고, 바쁜 사회복지사들은 시설을 나간 아이들에게 일일이 조언을 건넬 여유가 부족하다.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친구들끼리 으레 주제로 삼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또래들과 그런 이야기를 별로 나눠본 적이 없다는 이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 꿈꿀 수 있는 영역도 비좁아지기 마련이다. 다은 씨는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얻은 기회로 지원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하고 싶었던 공부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든든히 등을 받쳐 줄 어른이 없는 상황에서, '자유'는 현실이 허락하는 만큼만 주어졌다.

◇축복받는 자립이 되려면 = 이들은 마냥 철없을 어린 나이부터 자립을 생각해야 했다. 국가는 시설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이 만 15세가 되면, 매년 자립지원계획서와 자립기술평가서를 받는다. 아이들은 진학·취업 등 희망분야와 등록금 조달방안, 후원금 지정 여부 등 구체적인 자립계획을 적어내야 한다. 미리 홀로 설 준비를 고민해 보라는 취지다.

이주원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어린 나이에 자립을 고민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속상함을 느낄 때가 잦다"고 말했다. 서혜빈 시설장 역시 "우리 아이들이 강제로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며 동의했다.

종수 씨는 "자립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처럼 생각하는 인식을 다들 내려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호대상아동들은 오히려 그런 인식에 자립에 공포와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시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자립을 생각하도록 챙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태진 씨는 "각 시설에 자립지원전담요원도 늘려야 하고,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립을 앞둔 친구들을 지지해줄 '어른'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은 씨는 보호대상아동을 바라보는 틀에 박힌 인식을 접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그는 "가정사를 고백했을 때 '너 되게 잘 컸다'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호대상아동들은 바르게 자라기 어렵다는 편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다은 씨는 자립한 보호대상아동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내 보호대상아동, 전국 4번째로 많아 = 보호대상아동은 아동복지법상 보호자가 없거나 아이를 키우기 적당하지 않아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부모가 사망하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경우, 아이가 학대를 당했거나, 가출했거나 미아된 경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를 보면 지난해 도내에서 발생한 보호대상아동만 188명(전국 4047명)이다. 이 중 아동학대(43.6%) 비중이 가장 높고 부모 이혼(22.8%), 부모 사망(11.1%)이 그 뒤를 따른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경남지역 보호대상아동은 총 1819명으로 전국(2만 6206명)에서 4번째로 많다. 이들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의 시설에서 보호받거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진다. 입양되는 일도 있지만 그 수는 적다. 아동양육시설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전통적인 시설이다. 공동생활가정은 정원이 7명 이내로 더 가정과 유사한 환경을 갖춘 곳이다. 가정위탁세대는 친인척 혹은 아동과 연고가 없는 일반 가정이 아이를 대신 맡아 키우는 형태다. 현재 도내 아동양육시설은 24곳, 공동생활가정은 24곳, 가정위탁세대는 583곳이다.

보호대상아동이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편안히 자립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이 18세가 되거나 보호 목적이 달성됐다고 인정되면 보호조치를 종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보호종료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그대로 시설에서 나오는 '만기퇴소'다. 민법상 성년(만 19세)이 되기도 전에 자립에 뛰어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연장종료'로 대학진학, 직업훈련, 장애·질병 등의 사유가 있으면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경남에서는 2018년 기준 187명이 보호종료됐다. 이 중 만기퇴소는 61명(32.6%), 연장보호는 126명(67.3%)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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