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해군도시로 조성…마크사 거리 군대 추억 솔솔
우체국·흑백다방·원해루 등 곳곳에 남은 근대건축물 눈길

창원시 진해구 도심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해군도시였다. 창원시는 진해 북원·중원·남원로터리를 연결해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이란 탐방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진해 역사를 간직한 충무동 군항마을도 만들어져 있다. 사실 중원로터리 주변만 잘 돌아봐도 곳곳에 남은 근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지금 진해 도심은 원래 '중평한들'이라 불리던 넓고 기름진 들판이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경화동 쪽으로 쫓아내고 당시 1200살 정도 되었던 팽나무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여덟 갈래로 길을 내어 방사형 시가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해군기지가 된 도시의 이름을 웅천(熊川)에서 제압할 진(鎭), 바다 해(海), 진해로 바꿨다. 팽나무가 죽자, 1950년에는 느티나무를 심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분수대와 시계탑이 있었다. 지금 같은 잔디광장이 된 건 2007년부터다.

진해탑이 있는 제황산을 등지고 중원로터리를 가만히 바라보는 하얀 건물은 진해우체국이다. 1912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2000년까지도 이 건물에서 우체국 업무를 봤다.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서양건축물로 미학적으로도 잘 지은 데다 외형이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어 진해 근대 유산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더러 등장했다.

▲ 1912년에 지은 진해우체국.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보존도 잘 돼 있어 진해 근대문화유산을 대표한다. /이서후 기자
▲ 1912년에 지은 진해우체국.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보존도 잘 돼 있어 진해 근대문화유산을 대표한다. /이서후 기자

진해우체국 옆으로 창원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입구 정원에 있는 시월유신탑은 근대유산은 아니지만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시월유신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이 장기 집권과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단행한 초헌법적인 비상조치를 말한다. 진해 시월유신탑은 1973년 3월에 만든 것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비슷한 탑이 많았는데, 현재 다 철거되고 유일하게 진해에만 남아있다는 말이 있다.

중원로터리 주변을 계속 따라가면 흑백다방이란 곳이 나온다. 건물 자체는 1912년에 지은 것으로 함경도 출신으로 진해에 정착한 유택렬 화백이 1955년 카르멘다방을 인수해 흑백이라고 이름 지은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0~70년대 진해 사람들의 낭만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흑백에서 조금만 더 가면 진해군항마을역사관이 나온다. 마을 경로당 건물을 고쳐 만든 것이다. 해설사들도 나름 동네 어르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분들의 설명을 들으며 진해 옛 모습을 간직한 사진들, 일상생활용품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군항마을역사관 앞은 '마크사 거리'로 불린다. ○○ 마크사란 간판을 단 가게들이 거리에 나란하다. 이들은 계급장과 명찰, 군복을 수리하는 등 군인용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거리 끝에 해군본부와 작전사령부와 교육사령부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었기에 비슷한 업종이 모여들어 형성됐다.

▲ 진해 북원로터리 우리나라 최초 이순신 동상 /이서후 기자
▲ 진해 북원로터리 우리나라 최초 이순신 동상 /이서후 기자

마크사 거리에서 다시 중원로터리를 따라 한 블록을 지나면 단골로 소개되는 진해 근대건축물 원해루와 수양회관을 볼 수 있다. 지금도 각각 중국음식점과 식당이 운영 중이다. 이 외에 북원로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 이순신 동상, 남원로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시를 적은 백범 김구 친필 시비도 살펴보고, 진해우체국 쪽 도로를 따라가면 길쭉하게 생긴 옛 일본식 건물(장옥거리)과 일제강점기 병원장 사택이었던 선학곰탕도 찾아보자. 

 

진해에서 만난 사람들

◇김금환 진해군항마을역사관 해설사 =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 가면 창원시 진해구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진해구 중앙동의 옛 노인정을 리모델링한 역사관은 지난 2012년 문을 열었다. 1920년에 지어진 적산가옥 목조건물로 지상 2층 규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녹색 조끼를 입은 어르신 2명이 "어서 오세요"라고 반긴다. 어르신들은 진해시니어클럽 소속으로 하루 3시간씩 월 30시간 사회참여활동을 한다. 진해군항마을역사관의 이야기 보따리꾼이다. 김금환(68) 씨는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진해 근대역사자료 등 350여 점이 전시돼 있다"며 "마을 단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담은 기록물이 잘 보존·전시돼 있어 지난 2014년 국가기록원 제7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 진해 근대건축물 원해루. /이서후 기자
▲ 진해 근대건축물 원해루. /이서후 기자

그는 1·2층에 전시된 기록물을 소개하며 친절히 설명했다. 공간이 협소해 전시를 다 해놓지 못한 기록물이 빛을 발하지 못해 아쉬웠다.

김 씨는 "진해는 전시관·박물관을 따로 찾지 않더라도 거리 곳곳에서 근대문화유적을 즐길 수 있는 도시다"며 "해마다 봄이면 진해 벚꽃을 보고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진해는 군항제 아니라도 언제든 오면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최정호 진해마크사 대표 = 군인들을 판매 대상으로 하나둘 형성되기 시작한 게 마크사, 명찰사, 제복사다. 진해는 군항의 도시로 군인들의 군복에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주는 마크사가 많이 있었다. 진해군항마을역사관 근처에 있는 마크사 거리에는 마크사와 군복 수선집이 밀집돼 있다. 건립연도는 194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타지에서 살던 최정호(66) 씨는 1977년 진해에 와서 25년간 진해마크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마크사는 쉽게 말해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라며 "해군사관학교 들어가는 '남문'에 마크사가 밀집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해는 자타가 공인하는 '해군 도시'여서 그런지 진해지역 마크사 주인들의 기술력이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고 말했다.

진해마크사는 미싱(재봉틀) 작업을 하지 않고 현재 감사패·기념패·명패 등을 제작한다. 최 대표는 "진해마크사에 오시는 손님 95%가 군인이다"며 "퇴직한 군인들도 가끔 우리 집에 와서는 '내가 옛날에 이 배를 탔다'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40여 년 전 진해에 왔을 때랑 비교하면 진해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며 "아등바등하며 경쟁적으로 사는 대도시보다 여유롭고 공기가 좋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