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힐링 국악콘서트 수어 통역사 등장해 작품 설명
손짓·몸짓·표정으로 고스란히 전달 그 자체로 아름다워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던 지난 23일, 관객의 박수 소리는 흡사 빗소리 같았다.

공연은 아름다웠다. 그 이상의 미사여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출연진은 무대를, 관객의 가슴을 흠뻑 적셨다.

이날 창원국악관현악단이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힐링 국악콘서트 '행복한 하루'를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공연에는 수어 통역사가 함께했다.

공연 전 내심 궁금했다. 수어 통역사가 동반한 공연을 본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음성언어가 아닌 가사를, 현장 분위기를, 어떻게 수어로 전달할까 기대감이 컸다.

이날 공연은 누구나 국악을 쉽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심성보 씨는 버나, 죽방울을 이용해 관객과 한바탕 어우러지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납작한 접시 모양의 버나를 꼬챙이나, 곰방대, 장대로 자유자재로 돌리며 묘기를 뽐냈다. 관객들은 "잘한다"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우었고 이곳저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은 친절했다. 국악기를 잘 모르는 관객을 위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해설자가 설명했다. 해설자의 설명이 끝나면 단원들이 직접 국악기를 연주했다. 국악기로 팝송과 영화 OST, 트로트를 연주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이날 수어 통역사는 무대 왼쪽(객석에서 바라봤을 땐 오른쪽) 한 편에 서서 해설자, 출연진의 모든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브리핑, 뉴스에서 봤던 수어 통역과 느낌이 달랐다. 무대에서 본 수어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특히 창원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고 김재은이 '아름다운 나라', '밀양아리랑'을 부를 때, 수어 통역사는 한 명의 무용수 같았다.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걸음 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 밤 달빛에도 참 어여뻐라/ 골목 골목 선 담장은 달빛을 반기네."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음악이 수어 통역사의 손짓, 몸짓,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마지막 무대는 창원국악관현악단과 국악단 소리바디의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 신모듬'이었다. 그들의 활기차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공연장 전체를 감쌌다.

우리에겐 '문화적 권리'가 있다. 누구나 문화를 즐기고 소비할 권리 말이다. 2006년 공표된 문화헌장에 따르면 '모든 시민은 계층·지역·성별·학벌·신체조건·소속집단·종교·인종 기타에 의한 어떤 차별도 받음이 없이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공연은 모든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어 더 아름다웠다.

지난 23일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최된 창원국악관현악단의 공연 '행복한 하루'는 수어 통역사가 무대에 등장해 해설과 노랫말을 통역하면서 진행됐다./김민지 기자
지난 23일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최된 창원국악관현악단의 공연 '행복한 하루'는 수어 통역사가 무대에 등장해 해설과 노랫말을 통역하면서 진행됐다./창원국악관현악단

■이향 수어 통역사 인터뷰

"누구에게나 즐길 권리, 들을 권리가 있죠."

23일 창원국악관현악단 공연에서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어준 이는 이향(52) 수어 통역사다. 그는 ㈔경남농아인협회 창원시마산지회 부설 창원시마산수어통역센터 소속으로 올해 14년째 수어 통역사로 활동 중이다. 이 수어 통역사는 "코로나19 브리핑 현장에 통역사들이 투입되면서 수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수어 통역사와의 일문일답.

-모든 사람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곳이 드문 것 같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공연장에 청각장애인이 없든 있든 모든 사람에게는 (공연을) 즐길 권리, 들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공연을 주최하는 측이나 제공하는 측에서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최근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배치돼 수어의 인식 확대, 수어 통역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이 늘었다. 이제 공연을 열 때 '통역사 없어요?'라는 질문이 당연시돼야 하지 않을까?"

-뉴스나 브리핑과 달리 공연장에서 수어 통역을 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나.

"아무래도 뉴스나 브리핑을 할 때 정보전달에 중점을 두고 내용이 딱딱하다 보니 자세가 정형화되어 있다. 공연할 때는 단순히 언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 분위기까지 전달해야 한다."

-코로나19 브리핑 당시 수어 통역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손동작 못지않게 표정 등이 중요하다. 그걸 비수지(非手指)라고 하는데 내용이 슬프구나, 기쁘구나 등을 얼굴 표정, 눈썹의 움직임, 몸의 방향 등으로도 나타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공연이 활성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틀리다가 아니라 '나와 다르구나'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또 청각장애인은 공연장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일례로 버스킹(길거리 공연) 관객 중에는 꼭 청인(비청각장애인)만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 버스킹 무대에서도 수어 통역이 제공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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