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골 인근 장군 생가 추정 터, 뒤 금오산·앞 남해 펼쳐진 명당
장군 모신 사당 경충사 가는 길, 마을 수호신 중방동문 비석 눈길

지난 시간에 이어 하동 정기룡 장군길 예정지를 걸어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매헌 정기룡(1562∼1622)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영웅으로 임진왜란 당시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렸던 명장입니다. 하동군에서는 정기룡 장군이 태어났고, 경충사란 사당이 있는 금남면 중평리 일대에 정기룡 장군길을 만들 계획입니다. 앞서는 하동군 금남면 중평마을의 인상적인 지붕들과 금남면에 유일한 고인돌을 찾아다닌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계속해 중평마을에서 길을 이어가겠습니다.

◇정기룡 장군 생가 터를 지나

바다를 등진 방향으로 중평마을을 빠져나오는 길 정면으로 늠름하게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중평경로당 뒤편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하동군이 지정한 보호수네요. 수령이 150년, 높이가 15m 정도 됩니다. 전체적으로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 어르신입니다. 주변으로 집 몇 채가 느티나무를 둘러싸고 있는데, 마치 집 마당에 커다란 정원수를 둔 것 같네요.

보호수를 뒤로하고 중평마을을 벗어나면 길은 들판 사이로 쭉 뻗은 도로가 상촌마을로 이어져 있습니다. 직선으로 600m 정도면 도착하지만, 우리는 왼쪽으로 들판 한가운데 있는 낮은 등성이로 향할 겁니다. 이 등성이는 전체적으로는 배밧등이라 불립니다. 바다 쪽으로 뻗은 작은 골짜기가 당산골인데, 이곳에 정기룡 장군 생가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다.

▲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경충사 입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영웅, 정기룡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서후 기자
▲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경충사 입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영웅, 정기룡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서후 기자

배밧등은 반듯하게 누운 여자 모양이라는데, 등성이 정상은 배 부분, 남쪽으로 뻗은 당산골이 다리 부분입니다. 어찌 보면 잉태할 아이가 태어날 위치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당산골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불렸습니다. 들판 한가운데 돌출한 모양새도 그렇고, 바다 쪽에서 당산골을 볼 때 뒤편으로 거대한 금오산이 마치 이 땅을 지키고 선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은 분명히 있습니다.

정기룡 장군 생가 터라고 해서 뭔가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그냥 참깨밭입니다. 그저 아, 여기가 생가 터구나 하고 잠시 둘러보시면 됩니다. 생가 터 뒤로 진양 정씨 재실인 모덕재가 있습니다. 집주인이 허락한다면 모덕재 앞집 옥상에 올라 중평마을 들판과 바다 풍경을 눈에 담아봐도 좋겠습니다. 들판을 힘차게 가르고 바다까지 뻗은 시멘트 농로가 풍경에 동적인 느낌을 덧붙입니다.

생가 터를 지나 그대로 시멘트 농로를 따라가면 '광진터'라는 마을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절대 징, 꽹과리 같은 농악 놀이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임진왜란의 경험에서 비롯한 일종의 금기(터부)나 징크스(불길한 징조) 같은 것 같습니다. 진영에서 징이나 꽹과리 소리가 나면 군사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러면 왜군들이 들이닥친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요.

▲ 가까이 지붕 앞으로 보이는 참깨 밭이 정기룡 장군 생가 터. /이서후 기자
▲ 가까이 지붕 앞으로 보이는 참깨 밭이 정기룡 장군 생가 터. /이서후 기자

광진터 마을은 눈으로만 보시고 우리는 당산골 집들 사이 골목을 통해 배밧등을 넘어갑니다. 배밧등 북쪽에서 상촌마을로 가는 길 옆 밭두렁에 지난 시간에 찾은 금남면 유일한 고인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인돌 하면 떠오르는 덮개돌과 받침돌 구조가 아니라 그냥 큰 바위가 땅에 묻혀 있는 느낌이라 얼핏 모르고 지날 수도 있으니 잘 살펴보세요.

◇도사의 예언이 담긴 바위 앞에서

중평마을에서 시작해 중평보건진료소 앞으로 난 도로를 그대로 따라가면 상촌마을을 가로질러 1002번 지방도를 만납니다. 이 도로 위쪽으로 하동청소년수련관과 정기룡 장군을 모신 사당인 경충사(景忠祠)가 있습니다. 1002번 지방도는 하동군 금남면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까지 이어져 있는 도로인데, 정기룡 장군을 기리고자 특별히 경충로(景忠路)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로를 건너면 바로 하동 금오산 집와이어 매표소가 보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그대로 올라가면 청소년수련관이고요. 청소년수련관에서 계곡 너머로 충의교란 다리를 건너면 경충사입니다. 아니면 매표소로 가지 않고 지나치면 식당이 나오는데 그쪽으로 경충사로 이어진 길이 따로 있습니다.

▲ 청소년수련원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중방동문 비석. /이서후 기자
▲ 청소년수련원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중방동문 비석. /이서후 기자

자, 경충사로 가기 전에 눈여겨볼만한 게 있습니다. 집와이어 매표소와 청소년수련관 가는 도로 입구 한쪽으로 커다란 바위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썩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자로 중방동문(衆芳洞門)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옛날부터 상촌마을 주민들은 이 비석을 마을 수호신으로 여겼답니다. 그런데 원래도 자연 상태의 바위에 새겨진 거라 외지인들이 알아보기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청소년수련관 공사를 할 때 땅에 파묻혔나 봐요. 주민들의 항의로 다시 살려 놓은 게 지금 모습입니다.

2005년 하동문화원이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800년대 정해영이란 분이 세운 것이라 합니다. 상촌마을 위 금오산 자락에 있는 중방골이란 계곡으로 가는 입구란 뜻이라고 하고요. 당시 어느 도사가 앞으로 이곳에 꽃다운 무리가 많이 모일 것이라 예언을 했는데, 지금 청소년수련관이 생겼으니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해야겠네요.

자, 드디어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에 도착했습니다. 경충사 자체도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1928년에 세웠는데, 일제강점기에 철거되면서 장군의 유품도 압수당했다고 하네요. 그러다 해방 후 다시 복원을 했습니다. 지금은 경충사 아래 장군의 생가를 복원한 초가집도 있고, 계곡 옆으로 덱으로 넓게 쉼터도 만들어놔서 쉬엄쉬엄 둘러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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