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보도연맹 민간인 피학살 유족
끔찍했던 당시 기억 증언으로 기록
피해 보상 등 정부가 풀 숙제도 제시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학생 시절 무대 작업을 했던 연극, 독일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밖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청년들의 소외된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최근 발간된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을 읽으며 30년도 더 된 그 기억을 소환하게 된 건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 가족들의 한 많은 삶에 동정심이 너울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억울한 일이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영문도 모른 채 죄인이 되어 처형당해야 하는 순간을 맞을 때, 어떤 마음일까? 느닷없이 불려간 가족이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가 경찰지서로 찾아갔을 때 '골(골짜기)로 갔다'는 소식을 접한 남은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누가 아버지의 가슴에 총을 쏘았습니까' 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유족들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어 안타까움과 슬픔을 같이했다.

"엄마한테 들은 이야긴데, 그때 아버지가 논 매고 있었어요. 연락을 받고 그때 잠깐 회의가 있어서 면에서 오라고 한다고 해서 갔어요. 평소에는 국수도 귀해서 못 먹었어. 그때는 새참이 특식이었어. 엄마가 새참으로 국수를 삶았어. 국수를 먹기 전에 엄마가 국수를 먹고 가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면에 잠깐 가서 오늘 논을 매야 하기 때문에 회의는 못가겠다고 말만 하고 오겠다, 갔다 와서 국수를 먹겠다고 하고 가서 더 이상 오지 못했어요. 자기 발로 걸어갔다가 그길로 끝이었어요. 면에 가니 바로 경찰서로 넘겨버렸어요. 만약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 그러면 도망을 가지, 자기 발로 걸어서 그렇게 가겠어요? 엄마도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가 왜 갔는지, 보도연맹에 왜 가입이 되었는지도 몰라요."(16쪽)

▲ 지난 2004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진행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골 발굴 현장. /경남도민일보 DB
▲ 지난 2004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진행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골 발굴 현장. /경남도민일보 DB

진주 평거동에 사는 강병현 씨의 증언이다. 희생자인 부친 강상준은 1921년생으로 사망 당시 29세였다고 한다. 보도연맹이 어떤 단체인가. 좌익사상 전향자들을 계몽하려고 검찰과 경찰 간부들로 구성된 이승만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가 아닌가. 그런데 이게 나중에는 의무가입 대상을 광범위하게 정해놓고 좌익과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도 마구 가입시켰다가 6·25전쟁이 발발하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승만 정부는 이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보도연맹원들을 연행해 대규모 집단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희생자 김종식의 딸 김형자 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시 보도연맹 학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모 심어 놓고, 6·25 일어나기 전에 제법 한 달 전이나 됐다고 하더라구요. 논을 닷 마지기를 사고, 힘이 들어서 다시는 논 안 살끼다 이러면서 모를 심어 놓고, 아침에 모를 둘러보고 면에 출근할 거라고 마루에 앉아있는데, 위에 마을에 이장이 와서 자네 여기 도장 좀 찍어주라고 하더래요. 우리 할머니가 '도장 그런 거 벌로 찍는 거 아이다' 그랬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읽어보더니 '어머이 우리 같은 사람은 여기 해당도 안 됩니다, 구장 얼굴 봐서 찍어주는 깁니더, 우리는 지서 가면 다 나옵니더' 이러면서 도장을 꾹 찍어주었다고 해요. 그길로 오후엔가 갔어요. (…) 경찰서 안에 가서 찾아보라고 하더랍니다. 경찰서 안에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아버지는 없었대요. 그래서 간수인가 경찰에게 물으니, 한 7시 30분 정도에 갑종 체격 건장한 사람 한 트럭이 나갔는데, 거기에 타고 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갑종이라 하면 체격이 건장한 사람을 말하는 거라고 뒤에 알게 되었어요. 어디로 갔는지 물으니 아마 문산으로 가기가 쉬웠을 거라고 하더래요. 그길로 끝이었어요."(104~105쪽)

책에는 17명의 희생자 이야기가 실렸다. 증언한 이는 대부분 희생자의 자녀들이다. 피가 냇물을 이뤄 흐르는 골짜기에서 얼마나 총을 많이 맞았던지 얼굴 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대신 차고 있던 허리띠로 아버지를 찾았다는 증언, 공부를 잘해 공무원 시험을 쳤지만, 연좌제에 걸려 결국은 개인사업을 해야만 했다는 사연, 다만 얼마라도 보상을 받고 위령제 지내주면 원이라도 풀고 죽겠다는 소원도 증언록에 담겼다.

책을 펴낸 '도서출판 피플파워'는 발간 이유를 이렇게 남겼다.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이란 이유로 끌려가 대한민국 군경에게 무참히 학살당할 때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유복자가 만 70세다. 이들 1세대 유족이 모두 숨지고 나면 더 이상 민간인학살의 역사를 증언해줄 이들도 사라지게 된다. 기억은 언젠가 잊히기 마련이지만 기록은 역사가 된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의 아픔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주유족회 증언채록팀(팀장 김주완)이 현장 채록작업을 하고 한국전쟁전후진주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가 엮었다. 302쪽.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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