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래 작가, 고향 마산서 전시
DMZ 숲 취재서 본 꽃에 영감
고통 이겨내는 삶 의지 담아내

오랜만에 배달래(51) 작가를 만났다. 창동예술촌에서였다. 지역에서는 그를 보디페인팅 예술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테다. 하지만, 그는 엄연한 서양화가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창동갤러리에서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란 전시를 열었다. 전시 막바지에 찾은 전시장에서 다행히 배 작가를 만났다.

"그리워서 왔어요."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작업실을 서울로 옮긴 후 5년 만에 찾은 고향 마산이다. 서울에서도 배 작가는 여전히 퍼포먼스를 하고, 전시를 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4대 강 사업으로 파괴된 강의 아픔을 그리기도 하고, 평화를 염원하며 그린 비무장지대(DMZ) 섬세한 풍경 묘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요즘엔 맨드라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도 모두 올해 그린 맨드라미 그림이었다. 원래 꽃 그림에는 관심도 없던 그가 맨드라미를 발견한 계기는 극적이다.

"DMZ 숲을 취재하러 갔다가 부대에 맨드라미가 추위를 견디며 머리를 숙이고 있는 걸 봤는데, 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 울렁울렁한 거예요. 맨드라미는 겨울 추위에 시들기 시작하고 잎도 비틀어지고 꼬이고 상처투성이였어요. 꽃으로서는 가장 힘든 상태에 있었던 건데 그 모습을 보고 깊게 감정이입이 되었어요."

▲ 배달래 작가가 그린 맨드라미 작품 앞에서. /이서후 기자
▲ 배달래 작가가 그린 맨드라미 작품 앞에서. /이서후 기자

그는 상처투성이로 서 있는 맨드라미에서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꽃을 그렸지만 사람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그린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이었던 맨드라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대단지 주상복합상가 안 화단에 있던 맨드라미 무리를 그런 거예요. 제가 갔을 때가 12월 초였는데, 눈발이 살짝 날리는 날씨에 추위를 견디고 서 있는 모습이 현대인의 자화상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여성들이 폭력에 서로 의지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이었죠."

맨드라미 시리즈에서도 4대 강이나 DMZ 시리즈에서 보여준 배 작가 만의 유화 물감 표현 방식은 그대로다. 쉽게 말해 가까이서 보면 추상, 멀리서 보면 극사실이다. 이번 전시에 선뵌 맨드라미 작품들도 물감을 짓이기는 방식으로 그렸다.

"옆에서 보시면 매끈한 질감이 아니라 거칠게 표현된 게 확실히 보일 거예요. 이런 표현을 통해 마치 삶에 짓이겨진, 고통에 찌들어 사는 느낌과 함께 이글거리는 삶의 의지를 함께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식으로 맨드라미는 꽃을 통해 하나의 상처받은 영혼과 버텨 내려고 저항하는 강한 정신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요즘에 딱 어울리는 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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