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
창원시립예술단 등 140여 명 출연

사실 '오페라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가사·대사가 외국어로 되어 있고 지역에선 공연 자체도 잘 열리지 않아 친근감이 다른 장르에 비해 떨어진다. 3·15의거를 소재로 한 창작오페라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업이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 역사를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시도에 기대감이 컸다.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창원시립예술단이 지난 17일 오후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를 선보였다. 애초 3·15의거 60주년을 맞은 지난 3월 15일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오페라 작곡은 김대성, 대본·연출 김숙영, 총감독 신선섭, 음악감독 공기태, 지휘 이동신이 맡았다. 총 4막으로 140여 명이 출연했다. 

오페라는 역사적 사실에 치중했다. 드라마틱한 요소와 재미보다는 3·15의거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어른이 아닌 10대 학생들이 주역이 돼 3·15 부정선거를 규탄했고, "자유·민주·정의"를 외친 학생들이 민주주의 씨앗이고 영웅이라는 점이다. 

1막 1장은 김용실 마산고 학생의 집에서 시작된다. 제4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날, 김용실 주도하에 친구들은 부정선거에 반발해 시위를 준비한다. 1막 2장은 고무신과 막걸리를 나눠주며 선거운동을 하는 정부에 실망한 마산시민들이 통술집에 모여 정부를 비판한다.

2막은 무학초교 앞에 모인 학생들이 '협잡선거 물리쳐라', '부정선거 다시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외친다.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김주열은 핏대를 세우며 "국민이 정의를 알아야 하고 그런 정의로운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고 힘주어 말한다.

객석에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3막 1장은 진실을 찾아나서는 기자들이 등장한다. 허종 부산일보 기자는 아이들이 어른을 대신해 옳고 그름을 외쳤다며 "부끄럽다"고 말한다.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4막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3막 2장이었다. 관객의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부분이다. 김주열과 김주열 어머니 권찬주의 아리아가 돋보였다. 김주열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20여 일 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서 떠올랐다. 아들을 잃은 권찬주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신혜는 "새끼 놓친 못난 어미 어디서 위로받나"며 아주 구슬프게 노래했다. 김주열 역을 맡은 테너 민현기는 얼굴에 붕대를 한 채 "그리운 어머니 얼굴 한번 보고픈 데 내 앞에는 어둠뿐이고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라고 노래한다.

마지막 4막은 3·15의거로 목숨을 잃은 12명을 애도하고 시민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더 강해질 거라"고 노래한다.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오페라는 아리아보다는 대사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둔 레치타티보 부분이 많았다. 무대 위에 오른 오페라 가수들이 연기나 몸짓에 힘을 주기보단, 설명적 대사에 좀 더 힘을 실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3·15의거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주의 정신을 예술로 승화한 공연이라는 점, 우리지역 고유의 문화콘텐츠라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친구들과 공연을 관람한 황성순(63) 씨는 3·15의거 주역들 중 한 명인 노원자 마산제일여고 학생회장의 학교 후배다. 황 씨는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라 더 관심이 갔다"며 "특히 3막 2장에서 아들 김주열을 잃은 어머니가 구슬프게 우는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돼 눈물이 흐러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3·15의거를 조망하고 구암동에 있는 3·15민주묘지를 다시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17일 3·15의거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오페라 '찬란한 분노' 공연 장면. /창원시립예술단

지난해 갈라 콘서트를 본 박연정(47) 씨는 이번에 다시 가족과 공연장을 찾았다. 오페라를 보고 울었다는 박 씨는 "개인적으로 문화에 관심이 많아 3·15의거를 소재로 한 연극도 예전에 봤었다"며 "특히 이번 오페라는 김주열 열사와 김주열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가 서로 노래를 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중학생인 박 씨 아들은 "교과서 속 글자를 통해 배웠던 3·15의거를 공연을 보니 감동적이고 더 이해가 잘 됐다"고 말했다. 

김장희 3·15의거기념사업회장은 "이번 공연에서 김주열 열사뿐만 아니라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김용실 열사 등이 부각됐다"며 "창작오페라를 계기로 3·15의거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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